퇴직연금 20년의 실패…"기금화로 노후 기둥 다시 세워야"

금융사에 맡긴 20년 수익률,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쳐
기금형 도입과 국민연금 운용 역량 활용이 핵심 대안

 

국내 퇴직연금 제도가 2005년 12월 시행된 이후 20년을 맞았지만,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수익률과 높은 수수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현재의 계약형 체계를 기금형으로 전환하고 국가적 차원의 공적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주최로 2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금화의 공적역할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을 다층 노후 소득 보장 체계의 깨진 기둥으로 규정했다.

 

발제를 맡은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년간 퇴직연금의 누적 수익률이 2.07%에 불과해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2.3%)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내 돈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깎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6.82%의 수익률을 기록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실패의 원인으로 금융기관에 모든 운용을 맡기는 계약형 구조를 꼽았다. 현재 퇴직연금의 90% 이상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다. 기업 담당자는 위험을 감수할 유인이 없고 전문성 없는 개인은 투자 결정을 강요받는 구조 속에서 자산이 저수익 상품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택 구입 등을 이유로 중도 인출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정작 은퇴 시점에는 노후 자금이 남아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해결책으로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제시됐다. 기금형은 개별 기업이나 근로자가 금융사와 계약하는 대신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탁법인 이사회가 주도권을 갖고 전문가에게 집합적인 투자를 맡기는 방식이다.

 

유호선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를 통해 대안을 제시했다. 덴마크의 경우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비영리 조직이 운영하는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연간 운영 비용을 0.32% 수준으로 낮추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영국 역시 노사가 협력해 투자 위험을 공동으로 나누는 집합적 확정기여형 모델(CDC)을 통해 개인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특히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민연금의 우수한 운용 실력을 퇴직연금에 빌려 쓰자는 제안이 주목받았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사가 운영을 담당하되 실제 자산 운용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위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낮은 수수료로 국민연금의 독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3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해 도입된 푸른씨앗(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공적 기금 방식의 통합 운용을 통해 4년 만에 누적 수익률 26%를 돌파하며 그 효용성을 증명한 바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 해소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년 미만 단기 근로자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퇴직연금 제도 안으로 포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퇴직연금관리공단을 신설해 중소기업과 취약 계층 근로자들의 노후 소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됐다.

 

참석자들은 퇴직연금 개혁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생존의 문제라는 데 뜻을 모았다.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닌 사회보장제도로 인식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입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기금화와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 사회적 기반이 마련될지 주목된다.(연합뉴스)


추천 비추천
추천
0명
0%
비추천
0명
0%

총 0명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