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경찰서에는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격앙된 목소리의 신고 전화가 밤중에 걸려 왔다.
경찰이 서둘러 출동해보니 20대 남성 A씨와 그의 부친이 서로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었다. 의과대학생인 A씨가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오자 이에 반대하던 부친과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A씨는 가정폭력을 주장하며 자신이 녹음한 부친과의 대화를 경찰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녹음파일에는 "수십 년을 키워줬는데 가족과는 상의 한마디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는 목소리가 담겼다.
욕설과 폭행 등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A씨도 부친을 "당신"이라고 부르며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그래도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A씨의 부친도 의사였다. A씨는 부친과의 분리 조치를 경찰에 요청했지만, 부친은 "자퇴서가 수리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옆에서 아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경찰은 가정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현장에서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사건이 진로를 놓고 벌어진 부자 사이의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묻지마 의대' 현상의 한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성과 흥미에 맞는 길을 찾기보다 '의대 입학'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내달리도록 한 사회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다. 2년 동안의 의대 정원 증원은 학부모의 기대를 부채질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대를 다니다가 자퇴 등으로 중도 이탈한 학생은 386명으로 전년(201명)보다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서울대·가톨릭대·울산대·연세대·성균관대 등 이른바 '주요 5개 의대'로 좁혀 봐도 지난해 중도 이탈자는 16명으로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이사는 최근 최상위권 성적의 중학생으로부터 "공대에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니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는 상담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임 대표는 "가장 안정적 진로는 의사 같은 전문직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공고해진 결과"라며 "특히 가족이 의사인 경우에는 이 같은 생각이 세대를 넘어 전파되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