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에선 뗐는데'…사장님 체납에 내 국민연금 17년 증발

작년 4천888억원 체납…올해는 반년 만에 체납액 5천031억원
국민연금만 근로자 가입기간 불인정…구제받으려면 '이중 부담'

 

매달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인 국민연금 보험료가 사장(사업주)의 체납으로 인해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했다.

 

사업주가 근로자 몫의 보험료를 원천징수하고도 납부하지 않은 장기 체납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사회보험 중에서 유독 국민연금만 근로자에게 그 피해를 전가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7일 4대 사회보험 징수 공단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3개월 이상 4대 사회보험 장기 체납액은 2024년 말 기준 총 1조1천217억원에 달했다. 이 중 국민연금 체납액이 4천888억원(체납 사업장 3만1천 곳)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민연금 체납액은 최근 다시 급증하고 있다. 2021년 5천817억원(4만 곳)에서 2024년 4천888억원(3만1천 곳)까지 감소세였으나, 2025년에는 6월까지만 집계했는데도 5천031억원을 기록하며 이미 작년 한 해 수준을 넘어섰다.

 

반년 만에 체납 규모가 크게 증가하며 경기 악화의 직격탄이 근로자들의 노후 안전망을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오랫동안 보험료를 안 낸 사업장은 무려 213개월, 즉 17년이 넘는 기간 동안 1억6천만원을 체납했다. 또 어떤 사업장은 2년 2개월 만에 26억원이 넘는 금액을 미납하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독소조항이다.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체납하더라도 근로자가 근무 사실만 증명하면(월급명세서 등) 모든 혜택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정부가 먼저 근로자를 보호하고 추후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다르다. 현행법상 사업주가 국민연금을 내지 않으면 해당 기간은 근로자의 가입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7년 체납 사례의 사업장 근로자라면 매달 월급에서 4.5%(9% 연금 보험료율의 절반인 근로자 부담분)를 꼬박꼬박 떼였음에도 17년의 노후 준비가 통째로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개별 납부'라는 구제책이 있지만 그 내용도 근로자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근로자가 이미 떼인 자신의 부담금(4.5%)을 또 내면 가입 기간의 50%만 인정해 준다.

 

만약 가입 기간을 100% 다 인정받고 싶다면 근로자가 자기 몫(4.5%)은 물론, 사장님이 내야 할 몫(4.5%)까지 총 9%를 혼자 뒤집어써야 한다.

 

근로자로서는 '왜 내 잘못도 아닌데 두 번 돈을 내야 하고, 심지어 사장님 몫까지 대신 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징수 시스템은 사실상 체납자를 방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민연금 체납으로 형사 고발까지 이어진 경우는 855건에 불과했다. 이들이 체납한 418억원 중에서 고발을 통해 실제로 징수한 금액은 고작 82억원으로 징수율이 19%에 그친다.

 

같은 기간 사업장이 폐업하고 5년이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받을 방법이 없다'며 징수를 포기해버린 '관리 종결' 체납액도 1천157억원에 달했다.

 

법적 조치마저 솜방망이에 그치는 사이에 체납 사업주는 재산을 빼돌리거나 시간을 끌며 법망을 빠져나가기 일쑤다. 결국 이 모든 구조는 "사장님이 떼먹고, 그 책임은 성실한 근로자가 짊어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체납된 연금 보험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노후이자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돈을 떼먹은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강력한 징수 시스템과 함께 성실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금 제도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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