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가 21일 새 총리로 선출됐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국회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선거 1차 투표에서 465표 중 과반(233표)을 웃돈 237표를 얻었다.
참의원(상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에 1표 부족한 123표를 획득해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와 치른 결선 투표 끝에 총리로 지명됐다. 결선 투표 득표수는 125표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를 맡은 이후 제104대 총리이자 140년 내각제 역사상 첫 여성 총리다.
그는 이날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새 내각을 정식으로 출범시킨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에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을 기용할 방침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하야시 요시마사, 모테기 도시미쓰 의원은 각각 방위상, 총무상, 외무상으로 발탁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자들을 주요 보직에 앉혀 당내 융화를 도모하려는 조처로 분석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다. 일본 정계에서는 드문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유리 천장'을 깨며 강경 보수 성향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 왔다.
그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을 잡았으나,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정치색이 유사한 강경 보수 성향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연정 상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해 우여곡절 끝에 총리직에 올랐다.
다만 다카이치 내각의 국정 운영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신회는 당분간 자당 의원이 입각하지 않는 이른바 '각외(閣外) 협력' 형태로 연정에 참여하기로 해 공명당 의원이 국토교통상 등을 맡았던 기존 자민당·공명당 연정보다는 협력 관계가 약할 것으로 분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과 유신회 사이에 국회의원 정수 축소, 기업·단체 후원금 폐지, 선거 출마자 조율, 약한 연결고리 등 4가지 갈등의 불씨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보수 정책에 제동을 걸었던 공명당에서 개헌과 방위력 강화 등을 바라는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한층 선명해졌다고 해설했다.
그러나 자민당과 유신회는 의석수를 합쳐도 과반이 되지 않는 소수 여당이어서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다른 정당과 협력이 필요하다.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196석, 유신회 35석으로 과반인 233석에 2석 모자란다. 참의원 의석수는 자민당 101석, 유신회 19석이다. 과반인 125석에는 5석 부족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자민당 의원 총회에서 "유연성을 갖고 국가·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확실히 전진해 나갈 것"이라며 "폭넓게 각 당에 요청해 논의를 축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으로 역사 인식이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에서 협력 기조가 이어졌던 한일관계가 격랑에 휘말릴지도 주목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역사·영토 문제에서 강경한 '매파' 발언을 쏟아냈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다.
그는 지난 17∼19일 진행된 야스쿠니신사 가을 예대제(例大祭·제사) 기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 등을 고려해 참배를 보류했다.
그러나 보수층 결집을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전격적으로 참배하거나 역사 문제에서 대응 수위를 높이면 한일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급선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시바 전 총리가 퇴임 의사를 표명한 9월 초순부터 국정 공백 사태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해 일단 고물가 대책 수립 등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재 선거 과정에서 재정 확장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한편, 이시바 내각 각료는 이날 오전 총사직했다. 작년 10월 취임한 이시바 전 총리 재임 기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 중 24번째로 긴 386일이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