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계약의 장기 유지율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운데, 수수료 선지급 중심의 영업 관행이 조기 해지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수수료 체계 개편과 판매채널 감독 강화 등 구조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2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보험회사 판매채널 영업효율 및 감독방향'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보험계약의 1년차 유지율은 87.5%로 비교적 높지만 2년차에는 69.2%, 3년차에는 54.2%로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보험계약 3건 중 1건은 2년 내 해지되고, 절반 가까이는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5년차 유지율은 46.3%에 그쳤다.
특히 보험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가 가입 초기에 집중되는 구조가 장기 유지율 저하의 ‘핵심 뇌관’으로 꼽힌다. 설계사들은 계약 체결 시점에 수수료의 상당 부분을 일시에 받는 경우가 많아 단기 실적에 치중하고 계약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수수료 선지급이 끝나는 3년차 이후 유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방카슈랑스(은행 창구 보험판매) 채널의 경우 2년차 유지율은 67.7%에서 3년차 37.3%로 ‘반 토막’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객이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온라인(CM) 채널의 3년차 유지율은 66.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같은 구조는 소비자 피해로 직결된다. 보험 가입 초기에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본인 상황에 맞지 않는 상품을 권유받아 해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해지 시 원금 손실, 환급금 감소 등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며, 보험 자체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진다.
업계 내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보험설계사들의 이직률이 높아 신규 설계사가 단기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영업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1년 내 설계사의 절반가량이 업계를 떠나 장기적 고객 관리 부재로 이어진다.
국내 보험계약의 2년차 유지율은 싱가포르(96.5%), 일본(90.9%), 대만(90.0%), 미국(89.4%) 등 주요국에 비해 약 20%포인트 낮다. 해외에서는 수수료 분할 지급, 엄격한 판매자 교육, 해지율 관리 등 다양한 제도로 장기 유지율을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계약 유지율 제고를 위해 상반기 내 판매수수료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수수료 선지급 한도를 설정하고 계약이 일정 기간 이상 유지될 때마다 분할로 지급하는 유지·관리 수수료 도입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설계사들이 계약을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한 방카슈랑스 채널의 판매비율 규제가 완화(25%→33% 이상)됨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제휴 보험사별 판매비중 공시, 상품 비교·설명의무 강화 등 소비자 보호 장치도 함께 추진된다.
보험 불완전판매비율은 0.025%로 최근 5년간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나, 생명보험(0.05%)이 손해보험(0.014%)보다 높고 설계사 채널의 3년차 유지율은 57% 안팎에 머물러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기 유지율과 불완전판매비율 등은 개선됐지만, 해외 대비 장기 유지율이 낮은 상황”이라며 “수수료 체계 개편과 함께 판매채널별 감독을 강화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