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칼럼] 코로나19 사막 속 노래 경연 프로그램 '난립'

 

지난 1월 26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라이브클럽협동조합 등 대중음악 공연장과 공연 기획사 종사자 중심으로 구성된 ‘대중음악 공연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한국 대중음악 공연계 대정부 호소문-대중음악 공연에 대한 차별 금지를 촉구합니다>를 발표했다.

 

이들은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 공연계 또한 코로나19에 집중 타격을 입었고, 2020년 1년 내내 사실상 빈사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다른 공연산업들, 이를테면 클래식, 뮤지컬, 연극 공연 등에 비하여 대중음악 공연은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중음악 공연은 다른 장르에 비하여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았다며 정부에게 일관된 기준과 적절한 지원을 요청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방역 기간에 많은 공연 기획사와 관련 업체가 도산했다.

 

홍대 앞 유명 소극장들이 이미 문을 닫았고, 대중음악과 인디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유명 라이브클럽과 공연장이 폐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동시대 음악사의 한 부분이 순식간에 과거사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또한, 음악 공간과 기획자 집단이 무너질 경우, 대형기획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닥부터 성장해가는 대중음악인들의 산실과 활동무대 자체가 사라져 음악산업의 버팀목 자체가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쓰러질 위기이다.


비대면-뉴미디어 음악산업에 대한 요구와 시도가 이어졌지만, 소규모 저예산 음악인들에게 그것은 대안이 되기 힘들었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은 애초에 그들에게는 불리하다. 유튜브만 둘러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유튜브 클립들은 이미 유명세를 충분히 가진 가수들이거나, 대형 방송사가 자사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유튜브에 제공하는 영상들이다. 일례로 TV 노래 경연 프로그램 중에서 그나마 반응이 좋은 JTBC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이 띄우는 방송 클립들은 단기간에 조회수가 1,000~2,000만까지 뛰어올랐다. 

 

■ 난립하는 TV 노래 경연 프로그램

 

TV조선이 <미스터트롯>으로 한몫을 잡자 다른 채널들도 트로트를 소재로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을 찍어내듯 만들어냈다. <미스트롯>, <트롯파이터>, <트롯전국체전>처럼 타이틀도 가관이다. 이 난립상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로드 투 킹덤>, <포커스-Folk Us>가 있는가 하면, 상금 1억 원을 내걸고 타이틀까지 노골적인 <로또싱어: THE SONG>은 갈 데까지 간 극한지점을 보여준다. 부활하는 <슈퍼밴드-시즌2>는 남성 음악인에게만 지원 자격을 부여하여 성차별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신인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프로듀서가 순위 조작 등으로 처벌을 받는 와중이었는데도 이처럼 비슷한 유형의 복사판 방송 편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자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조장한 아이돌 열풍이 사라지고 콘텐츠를 찾기 애매해지자 자기 복제로 도배라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첨가하는 음악인들 입장에서는 각자 활동 영역에서 성장하기 어렵고, 레이블(음악기획사) 발탁을 통하여 팬들을 차츰 넓힐 기회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방송사 오디션이 되어버렸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비정상 상황이다.


이 와중에 그나마 성공적인 시청률을 보인 프로그램이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이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데뷔한 적 있으나 성공하지 못한, 혹은 잊힌 음악인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은 시작부터 씁쓸한 기획이다.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한 신인도 아니고, 프로 가수로 활동했음에도 여전히 쓸쓸하고 가난한 무명 가수라니! 그렇게 참가한 71팀 중에서 거르고 걸러 톱10까지 선발한 때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다.


의외로 이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감동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심사 기준이 여타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과는 조금 달랐다. 건강한 성대와 가창력을 자랑하는 스타일의 참가자들은 일찌감치 탈락했다. 다른 경연 프로그램 우승권까지 진출했던, 경연 프로그램 전문가로 음악 생활을 하는 참가자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심사위원들도 출연자를 가르치고 혼내는 분위기 대신 존중하고 경청하려 애쓰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연의 질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개중에는 개성이 너무 강해서, 혹은 오랫동안 마니아 장르에서 활동하느라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한 음악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비참한 장면들이 더 많았다. 이미 나름대로 팬층을 가진 음악인이 경연 프로그램 특성상 단번에 어필하지 못해 탈락하고, 약간의 실수 때문에 떨어지고,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노래가 마치 감동인양 포장되는 상황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태생적 한계이다. 특히 톱10 구성 직전, 패자부활전에서 일렬로 죽 늘어선 참가자들이 단 한 명만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장면은 보기에도 비참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프로그램 상위권 진출자 중 상당수 역시 그들의 전성기는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그 순간으로 남을 가능성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대학가요제>, <전국노래자랑>, <주부가요열창> 등등 모두 가창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저마다 성격이 달랐고, 사회적 배경이 달랐다. 중간에 사라진 이유가 있으며, 한계가 있고, 장수하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로 몇 개 되지 않는 방송사 채널이 도배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방송 채널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는데도 일반적인 방송 콘텐츠는 대부분 비슷비슷한 유행을 따르고 있다. 심지어 형식과 출연자도 겹치고, 오로지 타이틀만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중음악은 더욱더 심하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톱 밴드> 등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까지 이어지는 재탕 삼탕의 풍경을 지나, 이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온갖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는 ‘서바이벌 사회’가 또 도래했다. 

 

한편 방송사들이 신인 발굴 경연대회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무슨 목적으로 제작하는지,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 그리고 노래하는 행위와 예술노동의 값어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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