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범죄 악용 '대포통장' 유통범죄 활개…검거에는 수개월

텔레그램 등서 매매…투자사기·보이스피싱 등 범죄자금 세탁에 쓰여
당국,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유통조직 검거에 어려움…범죄수법은 진화

 

최근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에 의해 한국인 대학생이 감금·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국내외 범죄자금 세탁에 악용되는 '대포통장' 유통에 대한 보다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법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 기반이 되는 대포통장 거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대포통장 유통조직들이 익명성을 띠고 점조직 형태로 수사망을 피하고 있는 탓에 검거까지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실정이다.

 

18일 수사 당국에 따르면 국내외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등은 통상 한국에 있는 조직과 연계해 검은돈 세탁에 사용할 대포통장을 확보한다.

 

점조직 형태로 운영하는 국내 대포통장 유통조직은 텔레그램 등 온라인상에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등 광고 문구를 내걸고 매매자를 찾거나, 조직 최말단인 모집책이 직접 지인들을 꼬드기는 등 방식으로 대포통장을 확보한 뒤 또 다른 국내외 범죄조직에 돈을 받고 넘긴다.

 

이 과정에서 대포통장 모집책에 유인된 계좌 명의자들이 직접 국내외 범죄조직과 접촉해 통장을 넘기는 사례도 있다. 현재에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등에서는 대포통장 거래를 유도하는 광고 글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된 대포통장은 주로 온라인 도박사이트 범죄나 투자사기 등에 사용되다가 또 다른 유통과정을 거쳐 마지막에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사망한 한국인 대학생 박모(22) 씨를 고문했던 현지 범죄조직도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을 위한 범죄에 한국에서 확보한 대포통장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각종 범죄조직으로 넘어간 대포통장에는 계좌 하나당 수백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범죄 수익금이 입금된 뒤 빠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쓰이면 112에 신고되는 즉시 (계좌가)잠겨 버린다"며 "보이스피싱에 쓰는 계좌는 짧으면 하루 길어도 일주일을 못 넘긴다. 그래서 도박사이트와 투자사기에 대포통장을 쓸 만큼 다 쓰고, 마지막에는 피싱 범죄에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 등 일선 수사기관들은 통상 제보를 받거나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정 단서를 포착해 대포통장 유통조직 수사에 착수한다.

 

수사 당국은 검거한 모집책 등으로부터 확보한 휴대전화와 텔레그램 계정, 은행 계좌 등을 분석해 윗선 조직원 특정에 나서지만, 유통조직원 대부분이 타인 명의 휴대전화와 계좌 등을 사용하는 까닭에 뚜렷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조직 자체가 점조직처럼 운영되는 까닭에 검거된 모집책 등이 총책 등 윗선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복을 우려해 정확한 진술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조직 전체에 대한 수사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실정이다.

 

대포통장 유통조직 근거지가 수도권인 경우가 많아 지방에서 말단 조직원을 잡은 뒤 윗선을 검거하려면 수사 범위 확대가 필수지만 인력이 부족해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캄보디아에서 사망한 한국인 대학생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경북경찰청도 지난 9월 숨진 박씨를 현지로 유인한 국내 대포통장 유통조직 모집책 홍모(20대·구속기소)씨를 검거했으며, 1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홍씨와 공모한 대포통장 모집 주범 20대 A씨 1명만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위반 등 혐의로 추가 체포한 것에 그치고 있다. A씨는 지난 7월 대포통장 알선책인 홍씨로부터 지인인 박 씨를 소개받아, 박 씨 명의 통장을 개설하게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하게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대포통장 모집책과 연결된 또 다른 조직원을 찾아냈으나 이미 해외로 도주한 경우 해당 국가 경찰 협조를 받아 신병을 확보해야 하고, 국내로 소환하기 위해서는 외교부 협조도 필요해 수사에 상당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수사 기관 관계자는 "용의자가 해외에 있으면 현지 경찰 의지나 현지 법체계로 인해 검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앞서 2016년 대구경찰청도 국내 한 대포통장 조직원 검거부터 중국에 있던 해당 조직 2인자 체포까지 1년여 간이 걸린 적 있다.

 

이처럼 국내 수사 기관이 대포통장 유통 범죄 대응에 애를 먹는 사이 관련 범죄 수법은 더욱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대포통장 유통조직들은 유령 법인을 세우고 다수 법인 통장을 개설해 각종 범행에 활용한 뒤 폐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선 수사관들과 전문가 등은 대포통장을 활용한 각종 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지역 한 경찰관은 "유령 법인을 세워서 법인 통장을 여러 개 발급받는 수법이 늘고 있는 만큼 법인 통장 발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며 "보다 빠른 수사를 위해 법원의 영장 발급 절차도 더 신속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스미싱, 마약, 인신매매 등 모든 범죄가 대포통장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통장 개설 요건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도 높이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대포통장 수사는 발품이 많이 드는 수사인 만큼 인력 확충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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