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대마의 의학적 효능에 주목하며 100조 원대 시장을 향해 질주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낡은 규제에 발이 묶여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국회의 지적이 나왔다.
환각 성분이 없는 의료용 대마 성분(CBD)까지 마약으로 묶는 법적 족쇄 탓에 국내 산업 발전이 지체되는 것은 물론, 비싼 수입약에 의존하느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지고, 불법 유통 제품으로 인한 국민 안전까지 위협받는 '삼중고'에 처했다는 비판이다.
◇ 세계는 뛰는데…한국만 '거북이걸음'
10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5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2027년까지 109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이미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UN마약위원회마저 2020년 대마를 마약 목록에서 제외하며 세계적 흐름의 변화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한국의 시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환각을 일으키는 대마의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성분과 의학적 효능이 입증된 CBD 성분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규제한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고순도 CBD 추출 기술력을 충분히 갖추고도 제품 생산이나 판매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북 안동에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까지 지정하며 제도적 기반을 닦는 시늉은 했지만, 정작 핵심 규제가 그대로라 반쪽짜리 정책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 건보 재정 위협하는 '수입약' 의존
낡은 규제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의료용 대마 성분 의약품은 희귀 뇌전증 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으로 환자 1인당 연간 부담은 2천만원에서 200만원으로 크게 줄었지만, 나머지 1천800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구조다. 수입약에 의존하는 현 상황이 건보 재정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해결책이 눈앞에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디올렉스'의 핵심 특허는 이미 만료됐거나 향후 10년 내 만료를 앞두고 있어, 복제약(제네릭) 개발 길이 열려있다. 국산 복제약이 개발되면 약값을 획기적으로 낮춰 환자 부담과 건보 재정 누수를 동시에 막을 수 있다. 그러나 CBD 원료 사용을 막는 규제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개발에 뛰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항암치료 구토 완화, 다발성경화증 경련 완화 등 이미 해외에서 효과가 입증된 다른 대마 유래 의약품들은 국내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다.
◇ 방치된 불법 시장, 위험에 노출된 국민
정부가 합법적인 산업화의 길은 철저히 막아두는 동안, 음지에서는 불법·비공식 유통 시장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CBD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식용 대마씨 오일'을 CBD 오일로 오인하고 암, 파킨슨병, 뇌전증 등 심각한 질환에 치료제처럼 사용하는 사례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병증을 악화시키고 제때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정부의 모순적인 정책이 합법적인 의약품 개발은 가로막고, 오히려 국민을 위험한 불법 유통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개선하고 국민 건강과 경제적 이익을 모두 잡을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