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사들이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에 대응해 유병자(유병력자) 및 고령자를 위한 신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보험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가리지 않고 간편고지, 맞춤형 보장, 건강등급 연동 등 혁신적 요소를 앞세운 다양한 유병자 전용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 초고령사회 진입, 치매·암 등 노인 질환 급증…보험의 역할 커져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 45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0%를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7% 이상), 2017년 고령사회(14% 이상)를 거쳐 7년 4개월 만에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진입했다. 이 속도는 일본(10년), 네덜란드(17년), 프랑스(29년) 등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다.
이처럼 빠른 고령화는 암,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의 유병률을 높이고 있다. 2021년 기준 전체 암 유병자는 243만 명, 65세 이상에서는 119만 명으로 7명 중 1명이 암 유병자였다. 기대수명(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 발생 확률은 38.1%에 달한다. 의료기술 발전으로 암 생존율은 72.1%까지 높아졌지만, 재발·전이와 추가 치료비 부담은 여전히 크다.
치매 환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946만 명 중 약 98만 4000명(10.4%)이 치매 환자이며, 2030년에는 142만 명, 2050년에는 315만 명(16.6%)을 넘어설 전망이다.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022년 약 2,220만 원으로 10년 전보다 20% 가까이 증가했다.
가구 구조도 급변하고 있다. 1인 가구 비중은 2010년 23.9%에서 2023년 35.5%로 급증했고, 2세대 이상 가구는 43.0%로 감소했다. 가족 돌봄의 한계가 커지면서, 노후 의료·간병·생활비에 대한 대비가 절실해졌다.
◆ 신상품 속속 출시…‘초경증’부터 ‘간병’까지 맞춤 보장
유병자보험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내 보험사들도 이를 겨냥해 관련 상품들을 최근 속속 내놓으며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최근 ‘KB 3.N.5 슬기로운 간편건강보험 Plus’를 출시했다. 이 상품은 기존 간편고지 건강보험을 통합해 경증부터 중증 유병자까지 모두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가입 연령은 만 15~90세, 보장기간은 최대 110세까지다. 건강상태가 개선되면 더 낮은 보험료로 갱신할 수 있는 ‘무사고 계약전환제도’가 도입됐고, 암·뇌혈관·심장 등 3대 질병 진단비, 입원·수술비 등 200여 특약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요양·간병 보장도 추가돼 고령 유병자의 실질적 필요를 반영했다.
삼성생명은 ‘경증간편 플러스원 건강보험’을 선보였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유병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주요 고지 항목은 최근 3개월 내 입원·수술·재검사 필요 소견, 5년 내 입원·수술 이력, 5년 내 암·간경화 등 중증질환 진단·입원·수술 이력 등이다. 가입 연령은 만 15~70세로, 시니어 보장까지 고려한 상품이다.
한화손해보험은 당일 입퇴원 고객까지 가입 대상을 확대한 ‘한화 3N5 더간편건강보험’을 출시했다. ‘3N5 간편고지’ 방식으로, 3개월 내 의사 소견, N년 내 2일 이상 입원·수술, 5년 내 7대질병 진단·입원·수술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더 경증 간편건강보험’은 입원생활비 특약을 365일까지 확대하고, 간병인 사용 입원생활비 등 실질적 보장을 강화했다.
AXA손해보험(악사손보)은 고령자 및 유병자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AXA간편상해보험’을 선보였다. 일반상해로 인한 80% 이상 후유장해를 보장하며, 44종의 특약을 바탕으로 자동차사고·일상생활 상해·배상책임 등 다양한 위험을 폭넓게 보장한다. 간편고지형은 최근 3개월 내 진찰·검사 이력, 2년 내 입원·수술 이력 등 두 가지 질문만 통과하면 가입할 수 있다.
하나손해보험은 ‘하나더넥스트 3N5 간편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질병·상해 입원·수술 이력에 따라 맞춤형 요율이 적용되며, ‘무배당 뉴 건강하면 더 좋은 하나의 간편보험’은 건강등급이 개선되면 보험료를 할인해주고, 등급이 낮아져도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 구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병원이용 기록을 연동해 건강등급을 산출한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비대면으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유병자 전용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고객이 직접 모바일로 병력에 따라 가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맞춤 설계부터 청약까지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다. 표적항암약물치료비, 재해골절, 면역질환 등 다양한 특약을 추가해 보장 범위를 확대했다.
이 밖에도 고혈압·당뇨 환자, 암 완치자, 건강 고지 없이도 가입 가능한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의 ‘꽃보다 건강보험’은 61세부터 75세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고령자 특화 보험상품이다. 고혈압, 당뇨 유병자는 물론 암과 급성심근경색 등 주요 질병에 대한 진단비, 수술비, 입원비를 보장한다.
교보생명은 ‘교보 내게 맞는 건강보험(간편고지/갱신형)’을 판매한다. 일반암·유방암·전립선암·기타 소액암과 함께 사망보험금을 보장하고, 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에 대한 진단금과 수술비도 보장한다.
NH농협생명의 ‘9988NH건강보험’은 심질환·뇌혈관질환을 비롯해 녹내장과 특정 백내장, 관절염 등에 대한 수술과 입원을 보장하고 당뇨와 중증치매 진단 특약을 신설했다.
◆ 손해율 관리와 상품 혁신 병행…시장 성장세 지속
보험사들은 유병자 보험의 손해율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보험금 지급 위험이 높은 만큼, 보험료 할증, 가입금액 한도 제한, 감액기간 운영 등 리스크 관리 장치를 병행하고 있다.
아울러 건강등급 연동, 건강 개선 시 보험료 할인 등 차별화된 혜택을 도입해 고객의 건강관리 동기 부여와 장기적 보험 유지율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병자 보험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라며 “고객의 다양한 건강상태와 니즈에 대응하는 상품 혁신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