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일은 축복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산모들의 심리적 고통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초저출산이라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산후우울증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산후우울 실태와 개선 방안 연구'(연구자 이소영·김자연·홍혜영·임지영)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후 산모가 겪는 정신건강의 위기는 추가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통계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산후우울증을 진단받는 산모의 비율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출산 후 12개월을 기준으로 한 산후우울증 유병률은 2015년 1.38% 수준이었으나 2022년에는 3.20%로 집계됐다. 불과 7년 사이에 2.3배가 넘는 수치로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산후 6개월 시점의 유병률 또한 같은 기간 0.73%에서 1.85%로 두 배 이상 높아져 산모들의 정신적 건강 상태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산모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수치보다 더 생생하고 아프다. 2024년 산후조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에 아이를 낳은 산모 10명 중 약 7명에 가까운 68.5%가 일시적인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전문의로부터 산후우울증 확진을 받은 비율도 6.8%에 달했다. 산후우울감은 보통 출산 직후에 나타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평균적으로 산후 6개월을 넘기는 시점까지 지속되는 경향을 보여 산모들이 꽤 오랜 시간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시사한다.
산모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설문 결과, 응답자의 88.5%가 출산 후 급격한 신체적 건강 변화를 우울감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생활 환경의 급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양육에 대한 중압감이 뒤를 이었다. 특히 밤낮이 바뀐 생활 속에서 혼자 자녀를 돌봐야 하는 이른바 독박 육아 환경과 임신 전과 달라진 자신의 외형 변화 등이 산모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심리적 위축을 불러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정신건강 문제는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키는 고리가 된다. 연구에 따르면 결혼 당시에는 다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었더라도 산후우울증이나 깊은 우울감을 경험한 산모는 그렇지 않은 산모보다 추가 출산을 포기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았다. 마음의 병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출산과 육아의 고통을 감내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산모의 정신건강을 돌보지 않고서는 어떠한 출산 장려 정책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정책들은 여전히 현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 사업인 생애초기 건강관리 사업은 2025년 기준 전국 73개 보건소에서만 이뤄지고 있어 혜택을 받는 지역이 제한적이다.
산후우울증에 특화된 별도의 지원 체계가 부족하고 산모가 우울감을 호소하더라도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으로 이어지는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보고서는 산후 정신건강 정책이 치료 위주의 사후 처방에서 벗어나 예방과 조기 발견 중심의 통합적인 지원 체계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신 초기부터 산후 1년까지 전 주기에 걸친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하며 지원 대상을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과 가족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제적 취약계층일수록 산후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저소득층 산모를 위한 치료비 지원을 강화하고 현재 시범 운영 중인 생애초기 건강관리 사업을 조속히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산후우울증을 겪는 산모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산후 정신건강을 지키는 것은 산모 개인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가족의 행복 그리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예산 투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