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술자리가 끝난 뒤 "몸에서 열이 난다"며 외투를 느슨하게 걸치고 귀가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순간의 '따뜻함'은 자칫 겨울철 한랭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내놓은 '2024∼2025절기 한랭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 보고서를 보면 지난 겨울 저체온증 등의 한랭질환으로 신고된 사람은 총 334명이었고, 이 중 8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랭질환은 남성(69.8%), 65세 이상(54.8%)에 많았으며, 발생 장소는 길가(25.4%)·집(18.3%)·주거지 주변(14.1%) 등의 순이었다.
주목되는 대목은 한랭질환으로 진단된 환자 중 21.3%(71명)가 병원 도착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점이다. 겨울철 술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통념과는 정반대로, 음주가 한랭질환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의학적으로 보면 술을 마신 뒤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은 착각에 가깝다.
알코올이 말초 혈관을 확장시켜 피부 가까이 혈액이 몰리게 만들면서 일시적으로 열이 나는 듯한 감각이 생기는데, 이를 체온 상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추운 지역에서 보드카 같은 독주를 마시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속설이 퍼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혈관이 확장되면서 몸속 열은 피부를 통해 외부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따뜻하게 달궈진 난로의 문을 활짝 열어둔 것과 같은 상태인 셈이다. 그 결과 체온 유지에 가장 중요한 심부체온(몸 안쪽 장기의 온도)은 오히려 더 빠르게 떨어진다.
문제는 열 손실만이 아니다.
알코올은 뇌의 체온 조절 중추 기능을 둔화시키고, 추위를 느끼는 감각도 무디게 만든다. 술에 취한 사람은 추운 환경에서도 떨림(오한) 같은 방어 반응이 늦게 나타나거나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저체온증이 진행되고 있어도 본인이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다.
심부체온이 35도 미만으로 떨어지는 저체온증 단계에서는 마치 술에 취한 듯한 행동이 나타나고, 33도까지 내려가면 근육 강직 현상이 관찰된다. 32도로 떨어지면 불안이나 초조함과 함께 어지럼증, 현기증을 느낄 수 있다. 심할 경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식까지 희미해지면서 혼수상태나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음주 후 야외에서 잠이 드는 상황은 한랭질환 위험을 극적으로 높인다.
알코올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졸음을 유발하고, 체온이 떨어질수록 이 졸음은 더 심해진다. 판단력 저하, 추위 방치, 체온 급감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겨울철 고령자, 노숙인, 야외 음주자, 심야 귀가자에게서 저체온증이 많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한파 속 술자리가 불가피하다면 외투와 모자, 장갑 등 보온 장구를 평소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기고, 이동 중 야외 체류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양대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강보승 교수는 "겨울철 음주 후 저체온증을 겪는 응급 환자 중에는 치명적 부정맥인 '심실세동'이나 심장전기파에 '오스본'이라는 경고 파형이 발생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이 경우 저체온 손상뿐만 아니라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