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새로운 거물로 부상한 데이비드 엘리슨(42)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대기업 인수·합병을 잇달아 시도하면서 업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회장의 아들인 그는 작은 영화 제작사 스카이댄스 미디어에서 출발해 규모를 키워오다 올해 할리우드 메이저 기업인 파라마운트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때 할리우드 최고 기업으로 꼽힌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 인수를 추진 중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엘리슨이 침체에 빠진 파라마운트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워너까지 인수하게 되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산업의 규모를 더 쪼그라들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 공존하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전했다.
WSJ은 엘리슨이 10대 시절부터 비행기를 조종했고 20대에는 미국 내 10위권의 곡예비행사 기록을 쓸 정도의 '속도광'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키우는 데에도 이런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즐겨 보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운 그는 영화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영화계의 명문 서던캘리포니아대에 진학했으나, 강의실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판단해 학교를 그만두고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가 자금을 지원한 영화 '라파예트'(원제 Flyboys, 2006)에서 공동 주연을 맡았으나, 출연 예정이었던 두 번째 영화가 무산되자 그는 영화 제작자로 전향해 2010년 스카이댄스 미디어를 설립했다.
스카이댄스는 첫 영화로 코엔 형제 감독의 '더 브레이브'(원제 True Grit, 2010)를 제작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며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후 제작한 영화들의 잇단 성공으로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높인 뒤 파라마운트와 공동 제작한 '탑건: 매버릭'(2022)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스카이댄스가 거대 기업인 파라마운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엘리슨 가족의 자금력과 함께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지닌 점이 규제 당국의 승인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됐다.
8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파라마운트 인수를 마무리한 뒤 데이비드 엘리슨은 파라마운트 영화 부문 책임자인 셰리 랜싱에게 "우린 로켓처럼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파라마운트 수장으로 취임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파라마운트+ 스트리밍과 파라마운트 산하 CBS 방송에 UFC 경기를 유치하는 77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고, 넷플릭스 히트작 '기묘한 이야기' 제작자인 매트·로스 더퍼 형제를 스튜디오에 영입했으며, 온라인 뉴스매체 '프리 프레스'(Free Press)를 인수해 그 창립자인 바리 와이스를 CBS 뉴스 보도국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엘리슨은 지난 6주 동안 파라마운트보다 덩치가 더 큰 워너를 인수하기 위해 세 차례나 인수 제안서를 냈는데, 이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편하려는 그의 야망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WSJ은 평가했다.
엘리슨은 넷플릭스와 제대로 경쟁할 기업을 만들고 강력한 극장 사업을 뒷받침할 충분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해 워너 인수를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슨이 워너 인수에 성공하면 그는 워너와 파라마운트 영화·TV 스튜디오, 파라마운트+와 워너의 HBO 맥스 스트리밍 플랫폼, CNN과 코미디센트럴을 포함한 수십 개의 케이블 네트워크를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공룡' 기업을 장악하게 된다.
엘리슨의 자문을 맡고 있는 시티글로벌 은행 부문 회장 레온 칼바리아는 "그는 현재 거대한 시장이 펼쳐져 있으며 자신이 그 선두에 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파라마운트의 전성기 시절 10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배리 딜러는 "경영자로서 고위직에 오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경우 많은데, 데이비드 엘리슨은 보면 볼수록 계속해서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파라마운트의 영화 책임자 랜싱 역시 "지난 8주간은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파라마운트와 워너의 인수·합병이 이뤄질 경우 방송과 영화 사업 전반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워너 산하 CNN과 파라마운트의 CBS를 통합해 운영하는 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는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지만, 대대적인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두 메이저 스튜디오가 합쳐지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화 산업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과거 워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개봉하고 배우들에게 최고 수준의 계약금을 안겨주며 수많은 방송사에 인기 TV 프로그램을 제작해 공급하는 스튜디오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동안 일련의 인수합병으로 소유주가 바뀌면서 스튜디오 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태다.
엘리슨과 그의 팀은 합병 후에도 두 스튜디오를 별도로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인수·합병 사례로 미뤄보면 두 회사가 별도로 제작해 온 것보다 합병 후 더 적은 수의 영화를 제작·개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디즈니 산하로 편입된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의 경우에도 디즈니에 인수되기 직전인 2018년에는 한 해 동안 10여편의 영화를 개봉했으나, 올해 개봉한 영화는 몇 편 되지 않는다고 WSJ은 짚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