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아 프리미엄, '녹슨 파이프'부터 갈아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서 주문을 내고 결제를 마치기까지의 과정을 피터 슈타인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최고경영자(CEO)는 수도관에 빗댔다. 그는 29일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 패널토론에서 "한국 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배관"이라며 "녹슨 파이프 없이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량이 늘어도 인프라가 이를 감당하는지, 거래와 결제 과정에서 담보를 중복으로 요구하지는 않는지부터 점검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올해 들어 63.49% 오른 코스피의 추가 상승을 점치는 전망이 이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14일 애프터마켓을 열어 거래시간을 오후 8시까지 늘렸고 금융당국은 다음 달 결제주기를 T+2에서 T+1으로 줄이는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거래시간 연장과 결제주기 단축이 속도를 내는 사이 외국인 투자자가 실제로 거치는 환전과 거래 확인, 결제 절차의 불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해외 금융권은 청산과 결제, 수탁처럼 거래 이후 자금과 증권을 옮기는 인프라를 '배관(plumbing)'이라고 부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연차보고서에서 금융시스템을 경제의 배관에 비유하며 위기로 배관이 크게 손상됐다고 진단했다. 데이브 램스든 영란은행 부총재도 결제 이후 단계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장 기능에 없어서는 안 될 배관이라고 표현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머 교수는 1993년 발표한 'O링 이론'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를 사례로 들었다. 1986년 1월 챌린저호는 고무 패킹인 O링 하나가 낮은 기온에 굳어 기능을 잃으면서 발사 73초 만에 폭발했다. 크레머 교수는 여러 공정이 차례로 맞물린 생산에서는 한 공정의 실패가 결과물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점에 주목해 이를 국가 간 생산성 격차를 설명하는 틀로 발전시켰다. 주식 거래 역시 주문과 체결, 환전, 담보 납입, 결제 가운데 한 단계라도 막히면 완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결제주기 단축 논의에 속도를 붙인 사건으로는 2021년 1월 게임스톱 사태가 꼽힌다. 주가 급등락이 이어지던 1월 28일 새벽 청산기관 NSCC는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에 약 30억달러의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미 예치한 6억 9600만달러와 별도로 요구한 금액이었고 로빈후드가 창업 이후 유치한 투자금 약 20억달러보다도 많았다. 로빈후드가 게임스톱 매수를 제한하자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커졌고 사태는 의회 청문회로 이어졌다. 결제가 끝날 때까지 누적되는 위험을 증거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에서는 변동성이 커질수록 증권사의 담보 부담도 급격히 늘어난다. 미국은 2024년 5월 결제주기를 T+1으로 단축했고 이후 NSCC 청산기금 규모는 전환 전 같은 기간보다 23% 줄었다.

 

결제주기가 줄어들자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매수에 필요한 달러를 제때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외환 동시결제 시스템인 CLS가 마감 시각을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 증시 마감 후 두 시간 안팎에 환전 거래를 넘겨야 하는 아시아와 유럽 운용사들은 뉴욕에 인력을 파견하거나 달러를 미리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외환 동시결제 체계가 만들어진 계기는 1974년 6월 서독의 헤르슈타트은행 폐쇄였다. 당시 이 은행에 마르크화를 먼저 지급한 미국 은행들은 시차 때문에 달러를 받지 못했고 금융권은 이후 이 같은 위험을 '헤르슈타트 위험'이라고 불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말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설립됐고 2002년에는 두 통화를 동시에 주고받는 CLS가 가동에 들어갔다. 결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든 외환 안전장치가 미국의 결제주기 단축 과정에서는 해외 투자자의 부담 요인이 됐다.

 

MSCI는 지난 6월 연례 시장 분류에서 한국을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 명단에 다시 올리지 않았다. 역외에서 원화를 실물로 주고받을 수 없다는 점과 야간으로 연장한 역내 외환시장의 유동성 부족, 공매도 재개 이후의 운영 부담이 주된 이유였다.

 

앞서 발표한 시장 접근성 평가에서도 청산·결제 항목은 '개선 필요' 등급에 머물렀다. MSCI는 한국예탁결제원이 결제 개시 시각을 앞당겨 증권사의 사전 결제자금 부담을 일부 덜어준 점은 인정했다. 다만 결제가 여전히 투자자 ID별로 이뤄지고 자금 산정 방식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러 하위 펀드의 주문을 한 계좌로 묶어 처리하는 통합계좌 역시 실제 활용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은 시차 때문에 지금도 사실상 T+1 일정에 맞춰 결제를 준비한다. T+1이 시행되면 거래 당일 새벽에 결제를 지시해야 한다. 슈타인 CEO가 T+1 전환에 앞서 외환결제 절차와 시스템부터 정비하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ASIFMA도 한국 결제망 자체의 안정성은 높게 평가한다. 린든 차오 ASIFMA 이사는 지난 5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결제주기 단축 토론회에서 "한국 시장의 지연결제율은 0%에 가까워 미국의 2~3%와 유럽의 7%보다 낮다"라며 "(결제주기 단축에 있어서) 미국 등 선진시장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노승진 미래에셋증권 본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수작업에 기반한 결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어 전산 자동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제 불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상임대리인인 SC은행의 김미강 이사는 비거주 외국인이 매매일부터 결제일까지 사흘에 걸쳐 결제를 위한 별도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결제 지연이 거의 없는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겪는 불편은 결제망 내부보다 해외 투자자와 국내 인프라를 잇는 환전과 확인 절차에 집중돼 있다.

 

한국은 2000년 무렵 이미 T+2 결제를 운영해 T+3이던 미국과 일본보다 결제가 하루 빨랐다. 미국은 2017년 T+2를 거쳐 2024년 T+1으로 전환했고 일본은 2019년에야 T+2를 도입한 뒤 아직 T+1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다. 2023년 1월 T+1을 먼저 도입한 인도는 외국인 투자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늘렸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스위스는 2027년 10월 11일 T+1으로 동시에 전환한다. 올해를 준비 기간으로 정하고 내년 내내 업계 공동 테스트를 진행하는 일정이다. 영국은 체결 당일 거래 배분과 확인 절차를 마치도록 하는 기한을 올해 말로 별도로 정했다.

 

국내 워킹그룹은 올봄 뉴욕과 런던 현지 실사를 마쳤고 업계에서는 내년 10월 시행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사이먼 윌리엄스 블랙록 매니징디렉터는 T+1 전환을 시장 개혁을 앞당길 기회로 평가했다. 다만 시장 참여자별 요구를 파악하고 기술적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18년 삼성증권에서는 배당 입력 오류로 발행 한도를 수십 배 넘는 유령주식 28억여주가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들의 계좌에 입고됐고 이 가운데 501만주가 실제로 시장에서 매도됐다. 공매도 재개와 함께 가동된 중앙점검시스템(NSDS)은 첫 1년 동안 76건의 위반 의심 거래를 금융당국에 통보했는데 원인 대부분이 기관의 시스템 오류와 입력 실수였다. 대차거래 체결과 기록이 하나의 전산 체계로 연결돼 있지 않아 잔고 부족이 무차입 공매도인지 단순 누락인지 즉시 판별하지 못하고 해당 기관으로부터 메신저 대화 기록과 이메일, 엑셀 파일 등을 제출받아 대조하는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

 

거래소는 애프터마켓을 당초 6월 말 개설할 계획이었으나 증권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석 달 늦췄고 그사이 23주 동안 실제 시장과 같은 환경에서 모의시장을 운영했다. 결제주기 단축은 거래시간 연장보다 정비할 대상이 훨씬 많다. 외환시장 구조와 통합계좌, 사전 결제자금 산정, 대차거래 전산화, 증권사와 수탁은행의 야간 인력 운용이 함께 맞물려 있다. 지배구조 개혁을 두고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날 "법을 바꾼다고 해서 자본시장의 행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제 인프라 개편 역시 로드맵 발표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매기는 프리미엄은 수도꼭지의 개수보다 배관의 상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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