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19년 만에 5.2%를 넘어서면서 추석 연휴를 마친 원·달러 환율이 다시 1360원대로 올랐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인데도 원화 가치가 흑자 규모만큼 오르지 못하자 원화의 적정 수준인 균형환율을 두고 금융권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 1365.1원으로 연휴 직전 거래일인 23일(1358.4원)보다 6.7원 올랐다. 연휴 기간 미국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을 웃돌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당국자들의 매파적 발언이 잇따르면서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5.22%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협상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대거 순매도하면서 환율이 올랐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제안 등을 담은 이란의 '7일 계획'을 거부해 국제유가가 뛰자 28일(현지시간) 미 10년물 금리는 오후 3시 기준 5.241%로 2007년 6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30년물 금리도 5.561%로 2002년 6월 이후 가장 높았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0.67~0.92% 일제히 하락했다.
전날 코스피는 191.18포인트(2.70%) 내린 6889.74에 마감했다.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 6368억원어치를 순매도했고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미 국채 금리 급등에 SK하이닉스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가능성 보도와 오라클의 AI 데이터센터 사업 지연 소식이 겹친 탓이다.
권민수 한은 부총재는 전날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연휴 기간 글로벌 국채금리가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 등으로 상당폭 상승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이란 간 협상, 주요국 재정건전성 우려 및 AI 산업 기대 변화 등 대외 리스크 요인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439원에서 상반기 1500원대까지 치솟았다. 신한투자증권 하건형·문서현 연구원에 따르면 교역 상대국 통화와 물가를 함께 반영한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6월 2000년 이후 평균보다 18% 낮아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6월 1527원에서 8월 1406원으로 내려왔고 28일 기준 원화 가치는 지난해 말보다 5.4% 높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인 4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 연구원은 흑자국 통화가 절상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원화가 반대로 움직인 원인을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에서 찾았다. 국제통화기금(IMF) 방식으로 계산한 균형환율은 1323원이다. IMF가 평가한 한국의 적정 경상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9%인데 지난해 경기 요인을 조정한 실제 흑자는 6.4%로 2.5%포인트 많았다. 이를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지난해 평균 환율(1422원) 대비 7.5% 저평가라는 결과가 나온다. 국내 자료로 직접 추정할 경우 투자율이 2013~2019년 평균(30.4%)으로 회복한다고 가정하면 해외주식 투자 규모(GDP 대비 3.0~3.9%)에 따라 1326~1359원이 산출된다.
해외 유출을 구조로 인정하면 균형환율은 1401원으로 높아진다. 국민연금과 보험사, 개인이 해외주식을 사들이면서 매년 GDP의 3%가량은 환전 없이 해외에 머물고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살 때 들어오는 달러(GDP의 2%)는 절반가량이 선물환으로 헤지돼 현물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면 외환시장에 실제로 공급되는 흑자는 GDP의 4.4%로 적정 흑자와의 격차가 0.5%포인트로 줄어든다. 하 연구원은 "1400원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현재의 투자 부진과 해외투자 확대를 구조 요인으로 판단하는 것과 동일하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투자율은 2017년 31.9%를 정점으로 8년째 낮아졌다. 지난해 저축률은 35.1%로 2013~2019년 평균(35.4%)과 비슷했지만 기업저축은 23.8%로 최고치를 기록한 데 비해 정부저축은 2.9%로 최저치까지 내려갔다. 확장재정으로 국민저축이 4%포인트 줄었는데도 흑자가 오히려 커진 것은 투자가 더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AI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투자는 미국에 집중되고 국내 반도체 기업이 거둔 이익은 미국 현지 공장과 해외 주식으로 옮겨 간다. 국민연금도 해외 투자 비중 목표에 따라 매년 GDP의 2.2%에 해당하는 자금을 해외로 내보낸다. 하 연구원은 투자 부진이 국내 수익률을 낮춰 자금을 해외로 내보내고 이로 인해 절하된 원화가 해외자산 수익률을 높여 유출을 다시 키우는 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해외투자 확대를 구조적 현상으로 판단했다.

하 연구원은 8월 평균 환율 1406원이 이미 균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했다. 6월 이후 두 달간 원화 가치가 8% 오른 것은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 자금 265억달러가 유입되고 순환적 오버슈팅이 해소된 결과이며 원화 강세 추세의 시작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투자율과 해외 유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환율의 추가 하락 추세가 나타나기 어렵고 남은 하락 여지는 이란 리스크 프리미엄과 외국인의 한국 비중 조정 마무리로 설명되는 범위라고 봤다. 현 구조가 이어지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2035년 균형환율은 1430~1510원으로 제시했다. 투자 중심 정책이 자리 잡으면 1240~1300원으로 내려가고 반도체 특수가 끝나고 자금 유출이 빨라지면 1650~171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지난주 원화 강세의 배경으로 그동안 원·달러 환율의 반등폭이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했다는 점과 주가 반등을 꼽았다. KB국민은행 이민혁 연구원은 반도체 가격 상승과 국제유가 하향 안정이 함께 나타나면 교역조건이 개선돼 원화의 기초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D램 수출물가와 원유 수입물가의 비율이 순상품교역조건지수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원화 강세가 단순 수급 외에 교역조건이라는 펀더멘털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고 봤다. 브렌트유 11월물은 28일(현지시간) 배럴당 105.28달러로 여전히 100달러를 웃돌고 있다.
하 연구원은 반도체 단가 상승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을 순환 요인으로 보고 기본 시나리오에서 제외했다. 올해 수출입 가격 비율이 반도체 단가 영향으로 15% 급등했는데 이를 그대로 반영하면 원화가 20% 이상 저평가라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반도체 이익으로 흑자가 늘어도 달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원화는 절상되지 않는다며 코스피 상승과 원화 약세가 함께 나타나는 것은 현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6월부터 매달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고 9월 들어서만 28일까지 17조 2996억원어치를 팔았다. 우리은행 민경원·임환열 연구원은 대외 불확실성에도 원화가 상대적으로 견조한 것은 반도체 수출 호조를 바탕으로 한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이 분기 말을 맞아 꾸준히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연준이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인상에 나설 확률을 70.3%까지 반영했다.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23일(현지시간)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낮추려면 "추가적인 정책 조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고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연내 한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 이유정 연구원은 이번 주 발표되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와 비농업 고용지표가 예상을 웃돌면 추가 긴축 전망이 강해질 수 있다며 고금리 기조가 수출 호조에 따른 우호적인 수급 여건 속에서도 환율에 상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은행은 이날 원·달러 환율이 1355~1366원, 우리은행은 1354~1367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