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두 달여 만에 200원 넘게 내리면서 물가와 통화정책, 기업 실적 전망을 읽는 기준이 한꺼번에 달라졌다. 같은 달 같은 거래를 재는 통계인데도 원화로 환산하느냐 달러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8월 지표에서 잇따랐다.
서울외국환시장 은행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지난 7월 2일 1555.8원에서 지난 14일 1347.3원으로 208.5원, 13.4% 떨어졌다. 지난 9일에는 1336.1원까지 내렸고 장중에는 1334.6원까지 밀렸다. 월평균 종가도 6월 1527.95원, 7월 1489.40원, 8월 1403.92원에 이어 이달 들어 14일까지 1350.34원으로 넉 달 연속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8월 수출입물가지수에 환율의 영향이 가장 먼저 반영됐다. 수출물가는 원화 기준으로 전월보다 3.7% 내렸지만 실제 계약에 쓰인 통화를 기준으로 하면 2.2% 올랐다. 수입물가도 원화 기준 2.4% 하락, 계약통화 기준 3.2% 상승으로 방향이 갈렸다. 한은 월평균 매매기준율이 7월 1497.43원에서 8월 1406.30원으로 6.1% 하락한 영향이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배럴당 76.75달러에서 88.75달러로 15.6% 뛰었지만 수입물가 총지수는 원화 기준으로 내렸다. 원유가 포함된 원재료 수입물가만 보면 계약통화 기준 8.1% 올랐는데 원화로 환산하면 1.5% 상승에 그쳤다. 유가 상승분의 대부분이 환율 하락으로 상쇄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환율의 영향은 크지 않다. 전년 동월 대비 원·달러 환율 상승률이 1.2%에 머물러 수출물가 상승률은 원화 기준 42.4%, 계약통화 기준 41.0%로 거의 같다. 40%대 상승률을 만든 것은 반도체다. DRAM 수출물가가 1년 전보다 253.4%, 플래시메모리가 250.6% 올랐고 컴퓨터·전자및광학기기 전체 수출물가는 113.2% 상승했다.

◆ 달러로 보면 사상 최대 수출…경상수지도 역대 2위
관세청이 15일 발표한 8월 수출입 현황 확정치에서 수출은 982억 82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68.7% 늘었다. 반도체 수출은 206.1% 증가한 468억 29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6%에 달했다. 무역수지는 347억 5000만달러 흑자로 석 달 연속 300억달러를 넘었으며 1~8월 누적 흑자는 2025억달러로 집계됐다. 달러로 작성하는 통계에서는 환율 변동이 지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은 무역지수에서도 8월 수출물량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5.9%, 수출금액지수가 75.8% 올랐다. 컴퓨터·전자및광학기기 수출물량지수 상승률은 30.5%였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27.1%, 소득교역조건지수는 60.0% 상승했다.
7월 경상수지는 420억 8000만달러 흑자로 월간 기준 역대 2위이자 7월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상품수출은 1004억 5000만달러로 두 달 연속 1000억달러를 넘었고 흑자는 39개월 연속 이어졌다.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422억 8000만달러로 한 달 새 143억 3000만달러 늘었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증가폭이며 잔액으로는 2022년 5월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많다. 반도체 기업이 받은 수출 대금이 은행 외화예금으로 몰리고 은행이 이를 한은에 예치하면서 보유액이 불어났다. 수출로 들어온 달러가 시장에 공급되면서 원화 가치를 밀어 올렸다.
소비자물가에는 아직 환율 하락분이 들어오지 않았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7월 2.8%보다 0.3%포인트 높아졌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3.4%로 2023년 5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다만 상승폭을 키운 것은 물가 압력 자체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이동통신 요금 50% 감면에 따른 기저효과가 0.58%포인트를 밀어 올렸고, 국가데이터처는 이를 제외하면 8월 물가 상승률이 2.5%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석유류 가격은 14.2% 올라 7월 15.5%보다 상승폭을 줄였다. 수입물가는 계약시점 가격을 조사하기 때문에 원화 환산 수입단가 하락이 국내 소비자물가로 전달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린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7월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린 데 이어 8월 27일 3.00%로 추가 인상했다. 두 달 연속 인상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이어진 일곱 차례 인상 이후 3년 7개월 만이며, 기준금리가 3%대로 돌아간 것은 2024년 11월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8월 결정은 금통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찬성했고 황건일 위원은 동결 의견을 냈다. 두 차례 결정 모두 고환율과 물가 압력을 배경에 두고 있었으나, 8월 말 이후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내려오면서 인상을 뒷받침하던 근거 가운데 하나가 약해졌다. 다음 금통위는 10월 22일 열린다.
◆ 같은 환율에도 갈리는 실적… 재고·헤지 시차가 변수
연합뉴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 합계는 7월 10일 661조원에서 이달 11일 640조원으로 21조원 줄었다. 3분기 전망치도 199조원에서 188조원으로 내려왔다. SK하이닉스는 반기보고서에서 6월 말 기준 외화자산·부채 규모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원·달러 환율이 10% 내리면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이 4조 7500억원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환율 하락의 충격은 수출 비중이 아니라 기업별 노출 정도에 따라 갈린다. 한화투자증권이 공시를 활용해 추정한 결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현대차는 해외매출에서 해외 비용을 제외한 순영업노출 비중이 높아 환율 하락 시 영업이익률 하락폭이 컸다. 반면 삼성SDI는 해외매출 비중이 90%를 넘는데도 현지 생산과 비용이 이를 상쇄해 순영업노출이 거의 남지 않았다. 환율이 5% 내릴 때 순영업노출 비중이 10%포인트 높은 기업은 영업이익률 하락폭이 0.15%포인트 더 컸다. 달러로 원재료를 사들여 환율 하락분을 되받는 자연헤지 비율은 석유제품이 약 50%로 가장 높았고 자동차와 라면은 10~12%로 가장 낮았다.
환율이 움직인 시점과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은 일치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미 확보한 재고를 쓰고 기존 계약가격으로 납품하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 분석에서 삼성전자의 재고회전일수는 94일, 재고 시차는 3.1개월로 원가 절감 효과가 충격 초기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재고를 과거 환율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수주잔고가 큰 HD현대일렉트릭은 가격 인식과 인도 시차가 더 길었고, 반대로 에쓰오일은 재고 시차가 짧고 원재료 가격 변화를 판매가격에 빠르게 반영해 매출과 원가 양쪽으로 충격이 가장 먼저 전달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환헤지도 손실을 없애지는 못한다. 한화투자증권이 공시로 산출한 헤지 비중은 HD현대일렉트릭 21.4%, LS ELECTRIC 30.0%, HD건설기계 37.4%였다. 헤지 비율이 높은 기업은 환율이 내린 분기의 영업이익률 하락폭이 작았지만 네 분기 뒤에는 헤지하지 않은 경우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했다. 초기 충격을 줄이는 대신 반영 시점을 뒤로 미루는 효과에 가깝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환율 하락 충격이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외수요 개선이 원화 강세로 이어진 경우에는 물량과 달러 가격 상승이 원화 환산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 분석에서 환율이 5% 내릴 때 영업이익률은 다른 조건이 그대로인 경우 1.67%포인트 낮아졌지만, 수요가 함께 개선되는 경우에는 1.43%포인트 올라갔다. 2010년 이후 자료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1% 오를 때 달러표시 수출액은 12개월 누적 1.45% 줄어, 원화가 약해지면 수출이 늘어난다는 통념과 반대로 나타났다.
원화는 엔화 대비로도 절상됐다. 원·100엔 환율(하나은행 고시, 오후 3시 30분 기준)은 6월 평균 950.43원에서 7월 916.62원, 8월 884.05원으로 내렸고 이달 들어 14일까지 867.14원을 기록했다. 지난 6월 5일 962.24원에서 8월 31일 856.1원까지 106.14원, 11.0% 떨어졌다가 이달 들어 873원대로 되올랐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26일까지 15조 3993억엔 규모로 엔화를 사들이고 7월 31일 미국과 공조 개입에 나선 데 이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대가 커지면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경쟁하는 자동차·기계 업종은 원화가 엔화보다 빠르게 절상될수록 가격 조건이 불리해진다.
다음 달 16일 공표되는 9월 수출입물가에서는 원화 기준과 계약통화 기준의 격차가 8월보다 벌어질 전망이다. 일본은행은 오는 18일, 금통위는 다음 달 22일 금리를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