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새 209원 빠진 원·달러 환율…멈춰 선 수출기업 네고가 변수

4일 장중 1345원까지, 1년 2개월 만의 최저
미 고용 서프라이즈로 하락 제동…네고 재개 여부가 관건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지난 4일 1년 2개월 만에 1340원대로 내려앉았다. 장중 기준으로 7월 초 1560원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09원 떨어졌다. 원화는 최근 석 달 동안 달러 대비 13%가량 절상돼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강한 통화가 됐다. 두 달 동안 하락을 이끌었던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가 멈춰 서면서 앞으로의 방향은 이 물량이 다시 나오는지에 달리게 됐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전 거래일보다 8.9원 내린 1350.4원에 마감했다. 1358.5원에 출발해 오후 3시 14분께 1349.5원까지 떨어졌고, 야간거래를 포함한 종가는 1350.1원, 장중 저점은 1345.0원이었다. 1340원대 진입은 지난해 7월 1일(1348.5원) 이후 처음이며 사흘 연속 하락으로 20원이 빠졌다. 최근 고점이던 7월 1일 장중 1559.2원과 비교하면 209원 낮은 수준이다.

 

방향이 바뀐 것은 이달 초다. 1일까지만 해도 시장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붙들고 있었다. 미군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하루 만에 5.20% 올라 7월 이후 처음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유가발 물가 상승 우려에 미 국채 금리는 장단기물이 모두 올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기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25bp 인상 확률은 67% 부근까지 상승했다. KB국민은행이 2일 예상 범위를 1368~1380원으로 잡고 상방 우세를 전망했던 배경이다.

 

이러한 기대는 이틀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미국 8월 ADP 민간고용이 3만 8000명 증가에 그쳐 예상치 4만 7000명을 밑돌았고,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3일 로이터 주최 화상 행사에서 앞으로 2주간 발표될 지표에서 물가 상승 둔화가 확인되면 금리 동결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잭슨홀 회의에서 나온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매파 발언이 하룻밤 만에 소화된 뒤였다. 페드워치 기준 9월 인상 확률은 50% 부근까지 내려왔고 달러지수는 99.00까지 떨어졌다.

 

일본은행의 긴축 기대도 원화를 끌어올렸다. 다카타 하지메 일본은행 심의위원이 신속한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엔화는 달러 대비 1.83% 절상됐고 오버나이트인덱스스와프(OIS) 시장에 반영된 일본은행의 9월 25bp 인상 확률은 98%까지 올랐다. 미무라 아쓰시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최근 엔화 움직임과 관련해 만족하지도 안심하지도 않고 있으며 계속 임전 태세라고 강조했다. 달러·엔 환율은 4일 장중 155.286엔까지 내려 미·일 공동 개입 직후였던 지난달 3일(155.220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국내 여건도 원화 강세 쪽으로 기울었다. 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4796억원을 순매수해 이틀 연속 매수 우위를 보였고 코스피는 6687.21로 107.73포인트 올랐다. 위안화가 강세를 보인 가운데 오후 들어 일부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이 가세하면서 환율이 낙폭을 키웠다.

 

두 달에 걸친 하락의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8월 한국 수출은 반도체에 힘입어 전년 대비 69% 급증했고 무역흑자는 347억 달러를 기록해 석 달 연속 3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지난 7월 기업의 외화예금이 전월보다 136억 달러 늘었지만 무역흑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수출로 벌어들인 160억 달러가량이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 풀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기업들이 국내 투자와 자사주 매입에 필요한 재원을 환전으로 마련하리라는 기대도 하락을 거들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호조로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서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7월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관련 자금 유입과 반도체 기업들의 주주환원 확대에 따른 추가 달러 매도 기대도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권 연구원은 "최근에는 달러 수요보다 기업발 달러 공급이 두드러지면서 단기 수급이 공급 우위로 이동했다"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규모가 상반기보다 줄면서 상승 압력이 약해졌고 정부의 환율 안정 의지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권 연구원은 최근 급락 과정에서 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가 함께 나타났다고 보고 당분간 환율이 다시 큰 폭으로 오르기보다는 안정세를 이어갈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NH투자증권은 4분기 평균 환율을 1380원 수준으로 예상하면서 단기 하단은 1300원대 초반까지 열어뒀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와 외국인 직접투자(FDI)에서 나오는 달러 수요는 꾸준히 남아 있다고 봤다. 권 연구원은 "예상보다 강한 기업발 달러 공급을 감안하면 단기 하단은 기존 전망보다 낮은 1300원대 초반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구조적인 달러 수요가 환율 하단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하락 국면에 제동을 건 것은 4일 밤 나온 미국 고용지표다. 미 노동통계국은 8월 비농업 신규고용이 전월보다 16만 2000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 5만 5000명을 세 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실업률은 4.1%로 전월과 같았고 경제활동참가율은 61.4%에서 61.6%로 올랐다. 7월 수치는 2만 3000명 감소에서 2만 1000명 증가로, 6월은 2만명 증가에서 3만 1000명 증가로 각각 수정돼 두 달간 5만 5000명이 상향됐다. 페드워치 기준 9월 인상 확률은 50% 초반에서 60%까지 올랐고 미 2년물 국채 금리는 3.01bp 상승한 4.3661%, 달러지수는 0.268포인트 오른 99.176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7일 원·달러 환율 예상 범위를 1343~1356원으로 제시하며 반등을 전망했다. 4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종가는 스왑포인트를 반영해 1345.20원으로 전일보다 5.20원 낮았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8월 신규고용이 예상을 약 두 배 웃돌면서 9월 연준 깜짝 인상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됐다"라며 "달러지수가 주요통화에 상승하면서 원화 강세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말했다. 월 중순 결제대금을 송금해야 하는 수입업체의 저가 매수와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용 환전 수요도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신한은행은 금주 예상 범위를 1340~1370원으로 제시했다.

 

반등 폭을 좌우할 변수는 멈춰 선 네고 물량이다. 1300원대 후반까지 꾸준히 매도로 대응하던 수출업체는 환율 낙폭이 깊어지자 원화 환전을 일시 중단했다.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겠다는 대응에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쪽으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신한은행도 시장 관성은 여전히 하방을 향해 있으나 단기간 급락한 탓에 수출 기업들이 달러 매도를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추가 하락 우려가 커질 경우 미뤄뒀던 물량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하락을 다시 자극할 여지도 남아 있다. 민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추가 하락 우려가 추격매도 형태의 네고 물량 유입으로 이어질 경우 단기적으로 달러/원 추가 하락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라며 "장중 큰 규모의 네고 물량 유입이 상승폭을 결정지을 변수"라고 말했다.

 

수급의 또 다른 축인 ADR 자금을 두고는 해석이 갈린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ADR로 조달한 265억 달러 가운데 200억 달러를 정부 외국환평형기금이 장외에서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8월 말 외환보유액이 4423억 달러로 전월보다 143억 3000만 달러 늘어난 점이 이 관측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거론된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시장에 이미 풀렸다고 봤던 달러가 정부 외화자산으로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4일자 보고서에서 ADR 일회성 재료가 소진되면서 달러 공급 공백이 생겨 환율이 반등할 것으로 봤던 자사의 9월 전망 논리가 상당히 약화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비축한 외화가 필요할 때 언제든 시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미투자 확대에 따른 외환보유액 회복력 우려도 줄어 당국의 시장 안정 대응력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원화 강세를 되돌릴 변수로는 통상 압박도 거론된다. 신한은행은 미국 정부가 한국 반도체를 겨냥한 관세를 예고하며 대미 투자를 압박하고 있어 원화 강세의 복병이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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