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강세 다시 시동…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번지나

엔화 한 달 만에 155엔대…3일 아시아 증시 동반 급락 후 되돌림
베선트 "엔화 저평가, 단호한 조치 지지"…9월 인상 전망 확산
15~16일 FOMC 결과가 관건…원화 12% 절상은 수출기업 부담

 

엔화 가치가 한 달 만에 달러당 155엔대로 올라서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시장에서 한 차례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오후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가 30분 만에 낙폭을 대부분 되돌리는 이례적인 등락을 보였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대외 여건에 뚜렷한 변화가 없는 가운데 주식시장만 크게 흔들린 배경으로 엔화 강세가 지목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3일 저녁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5.84엔을 기록했다. 7월 말 미국과 일본의 공조 개입 이후 160엔대로 되돌아갔던 환율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다시 급락했다. 같은 날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코스피는 이날 오후 2시 28분 전 거래일보다 1.88% 내린 6439.49까지 밀렸다. 30분 전만 해도 6645.41로 1.26% 올라 있던 지수가 짧은 시간에 3%포인트 넘게 하락한 것이다. 이후 낙폭을 대부분 만회하며 0.26% 오른 6579.48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시각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대만 가권지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상승세가 꺾이며 급락했다가 곧 반등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 표시 자산에 투자하고 금리 차이에서 수익을 얻는 전략이다. 일본과 투자 대상국의 금리 차이가 크고 엔화 약세가 이어질수록 유리하며 시장 변동성이 낮아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대로 일본 금리가 오르거나 엔화가 강세로 전환되면 차입한 엔화의 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팔아 엔화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자산가격 하락과 엔화 강세가 서로를 자극하는 연쇄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세 전환의 계기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였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회의에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만나 엔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면서 이에 대한 일본의 단호한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는 리플레이션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했다. 우에다 총재도 애슈빌 기자회견에서 다음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포함해 매번 회의에서 제대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가 기존 반년에 한 번 정도에서 대략 3개월에 한 번으로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인상 시점 앞당긴 증권가…"미 국채 수급이 배경"

전망 수정도 잇따랐다. DB증권은 4일 보고서에서 차기 금리 인상 시점 전망을 기존 12월에서 9월로 앞당기며 인상 폭은 25bp(1bp=0.01%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국채 수급 악화와 맞물려 보다 적극적인 엔화 약세 저지가 필요해진 점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제시된 매파적 의견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미 국채 수급 부담을 방어하려는 미국의 엔화 약세 차단 의지가 겹치면서 시장이 9월 조기 인상 기대를 빠르게 반영했다는 진단이다. 일본 내 임금인상률이 5%대를 유지하고 근로자 기본급이 꾸준히 오르며 인플레이션이 정착되고 있다는 점도 인상 논거로 제시됐다. DB증권은 최종 기준금리가 내년 말 2.00%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봤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정책금리를 연 0.75% 정도에서 1.0% 정도로 25bp 올려 1995년 이후 3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인상했고 7월에는 동결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달 22일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2024년 8월의 충격을 감안해 추가 인상에 신중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시장의 판단이 달라진 셈이다.

 

미국이 엔 강세를 요구하는 배경으로는 국채금리 안정이 꼽힌다.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보험사와 연기금, 기업, 개인 투자자 등 해외에 투자된 일본계 자금이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리패트리에이션 현상이 자극받을 수 있고, 이는 미 국채 수요 위축으로 연결된다. iM증권은 4일 '엔화 재강세: 이번에는 다를까' 보고서를 내고 베선트 장관이 9월 인상뿐 아니라 추가 인상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9월 25bp 인상과 함께 4분기와 내년 1분기에도 각각 25bp의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투기적 포지션의 움직임도 청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비상업적 엔화 선물 순매도 포지션은 지난달 28일 기준 16만 3000계약으로 2024년 7월의 18만 4000계약에 근접해 있다. iM증권은 7월 말 공조 개입 효과가 제약적이어서 엔화가 다시 약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탓에 숏포지션이 완만하게 청산돼 왔으나, 미국의 강세 요구와 일본은행의 긴축 가속 가능성이 부각되며 청산 속도가 빨라질 여지가 커졌다고 봤다. 여기에 베선트 장관의 국채 바이백 규모 확대 발표 이후 확산된 달러 약세 기대도 엔 강세 요인으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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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 전환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IBK투자증권은 같은 날 보고서에서 일본 국채금리가 30년 만에 3% 선을 넘어섰음에도 엔화가 절하되는 상태에 주목하며 금리와 환율의 관계가 깨져 있다고 진단했다. 관세를 통한 무역 압박과 대외갈등에 따른 고유가라는 트럼프 정부발 마찰 요인이 쉽게 사그라들기 어려운 만큼 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가 공존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고 중동산 원유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일본이 이런 마찰에 특히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의 반응에서는 미국과의 온도차가 드러난다. G20 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3일 취재진에게 베선트 장관의 일본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두고 특별히 주문은 없었다고 답했다. 베선트 장관이 리플레이션 정책 중단을 전달했다고 밝힌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가 처한 여건도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적극적인 재정 확장으로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다카이치노믹스는 제로금리와 마이너스 물가를 배경으로 했던 아베노믹스와 환경이 다르다. 환율이 물가를 자극하고 재정 확대가 금리를 밀어 올리면서 높아진 금리와 환율, 물가가 실질 소득을 압박해 부양 효과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것이 IBK투자증권의 분석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이어가면 이자 부담이 늘고, 금리를 안정시키려 하면 엔화 약세와 물가를 더 자극해 어느 한쪽에 집중하기 어렵다.

 

 

◆ 2024년 8월 재연되나…자금 규모 추산은 20배 차이

시장이 경계하는 것은 2024년 8월의 재연이다. 당시 일본은행의 예상보다 강한 금리 인상과 미국 고용지표 부진이 맞물리며 엔캐리 포지션이 급격히 청산됐다. 8월 5일 일본 토픽스지수는 12% 하락했고 엔·달러 환율은 5거래일 만에 5.2% 내려 달러당 145엔까지 떨어졌다. 국내에서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8.8%, 11.3% 급락해 양대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발동됐다. DB증권도 중장기적으로는 엔화의 저평가가 완화될 것으로 보면서도, 미국 고용과 소비자물가 지표 결과와 연방준비제도(Fed)·일본은행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급격한 약달러와 엔 강세 기대가 촉발되면 2024년 8월과 유사한 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청산 위험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자금 규모 추산치의 편차다. 금융연구원이 인용한 HSBC 추산은 1조달러 이상이지만 도이체방크는 전 세계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를 최대 20조달러로 추산해 왔고, 한국은행이 2024년 제시한 추산은 500조엔대였다. 도이체방크의 20조달러 추산은 2024년 8월 충격 국면에서 널리 인용됐으나 이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어느 추산을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예상되는 충격의 크기가 크게 달라진다.

 

지표의 성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엔화 선물 순매도 포지션은 투기적 자금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 실제로 엔화를 차입해 해외 자산에 투자한 자금의 총량과는 다르다. 포지션이 2024년 수준에 근접했다는 사실만으로 청산 압력의 크기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이번 엔화 강세가 캐리 청산과 같은 위험을 자극하기보다 미 국채금리의 단기 안정에 기여하는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국내 시장에서는 원화 절상 속도가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올랐다. 원화 가치는 6월 말 대비 12.2% 상승해 주요국 통화 가운데 절상 폭이 가장 컸다. iM증권은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9월 말 달러-원 환율을 1350원, 연말 환율을 1300원으로 전망했으나 엔화 강세 속도까지 빨라질 수 있어 1300원에 조기 접근할 공산이 커졌다고 수정했다. 엔화와 원화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고려하면 환율 측면의 부담은 2024년 8월보다 제한적일 여지가 있다. 반면 환율이 12% 이상 하락한 상태가 이어질 경우 3분기 수출 관련 기업들의 이익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장의 분수령은 이달 중순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5~16일 먼저 열리고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뒤를 잇는다. 박성우 DB증권 연구원은 "FOMC가 금리 인상이나 매파적 신호를 내놓을 경우 미·일 금리 차 확대와 일본 수입물가 압력 측면에서 일본은행의 인상이 사실상 불가피해질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두 회의를 전후해 엔화 강세 속도가 빨라질지가 청산 압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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