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잘못으로 난 사고라도 차를 고치고 수리비를 정산하면 그것으로 마무리됐다고 여기기 쉽다. 몇 년 뒤 차를 팔려고 내놓았을 때 연식도 주행거리도 비슷한 매물보다 값이 낮게 매겨지고 나서야 사고 이력이 남긴 손해를 실감하게 된다. 수리를 마친 뒤에도 회복되지 않는 이 가치 감소분을 자동차보험에서는 시세하락손해라고 부른다.
시세하락손해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의 대물배상 지급기준에 지급 항목으로 올라 있어 상대방 과실이 있는 사고라면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회사에 수리비와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 대물배상 항목이다 보니 상대 차량 없이 혼자 낸 사고를 자기차량손해로 처리하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지급 요건은 두 가지를 모두 채워야 한다. 사고 차량이 출고 후 5년 이하여야 하고 수리비용이 사고 직전 차량가액의 20%를 넘어야 한다. 받는 금액은 출고 후 기간에 따라 갈려 1년 이하면 수리비용의 20%, 1년 초과 2년 이하면 15%, 2년 초과 5년 이하면 10%다. 차량가액이 2000만원인 차에 수리비 800만원이 나왔다면 출고 1년 이내는 160만원, 2년 이내는 120만원, 5년 이내는 80만원을 받는다.
요건을 따질 때 쓰는 차량가액은 내 보험으로 처리할 때와 상대방 보험으로 처리할 때가 다르다. 자기차량손해는 보험개발원이 공표한 차량기준가액을 쓰지만 대물배상은 손상된 차와 차종·연식·형식·사용 상태·주행거리가 같은 차량이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무에서는 중고차 시세 조회 업체가 내놓는 시세를 근거로 정하고 시세표에 없는 차량이면 매매사업소나 인터넷 매매 사이트의 거래 사례를 찾아 산정한다.
기준을 채우기가 만만치는 않다. 수리비가 차량가액의 20%를 넘어야 하는 탓에 4500만원짜리 차라면 900만원이 넘는 수리비가 나와야 지급 대상에 오른다. 범퍼와 트렁크 도어를 갈아 끼우는 정도로는 문턱에 닿지 못한다. 2001년 도입 당시에는 출고 1년 이하 차량이면서 수리비가 차량가액의 30%를 넘어야 수리비의 10%를 지급했고 2006년 2년 이하로, 2019년 5년 이하로 대상이 넓어졌지만 과실이 전혀 없는데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은 여전하다.
약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청구가 끝나지는 않는다. 표준약관은 소송이 제기된 경우 법원의 확정판결 등에 따라 피보험자가 배상해야 할 금액을 보험금 지급액으로 본다고 정해두고 있다. 대법원도 수리를 마친 뒤 일부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았다면 그 교환가치 감소액을 수리비와 별도의 통상손해로 인정한다는 기준을 세워두고 있다(2017년 5월 17일 선고 2016다248806).
이 사건 차량은 사고 당시 가액이 1억 4500만원, 수리비가 2200만원으로 파손 정도가 15%에 그쳤고 출고 후 2년이 지나 당시 약관 기준으로는 지급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주요 부위가 파손되는 중대한 손상을 입은 이상 수리로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이 남는다고 보고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수리 뒤에도 남는 교환가치 감소액을 통상손해로 본다는 법리 자체는 1992년 판결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1992년 2월 11일 선고 91다28719).
대법원은 한 달 뒤 같은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중대한 손상인지 가리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2017년 6월 15일 선고 2016다267036). 사고의 경위와 정도, 파손 부위와 경중, 수리 방법, 자동차의 연식과 주행거리, 사고 당시 차량가액에서 수리비가 차지하는 비율, 중고자동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사고 이력으로 기재할 대상이 되는 수리였는지를 종합해 사회 일반의 거래 관념과 경험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것이다. 다만 중대한 손상이라는 점은 그렇게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소송으로 가면 교환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청구하는 쪽이 입증해야 한다. 사고 전후 시세 차이를 뒷받침할 감정 자료 없이 사고 이력이 남았다는 사정만 내세워서는 금액을 인정받기 어렵다. 수입차나 고가 차량은 같은 수리 내역이라도 감가 폭이 크게 잡히는 사례가 많아 감정 결과에 따라 회수 금액이 크게 달라진다.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문구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고와 관련해 더 이상 청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이 들어 있으면 뒤늦게 시세하락손해를 청구할 길이 막힌다.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3년이지만 기산점을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수리비를 정산할 때 함께 청구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내 과실이 섞인 사고라면 시세하락손해도 과실 비율만큼 깎인다. 상대방 과실이 70%인 사고에서 산정액이 100만원 나왔다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이다. 보험회사가 수리비를 정산하면서 이 항목을 먼저 안내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출고 5년 이내 차량이 크게 파손됐다면 지급 대상인지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