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청년 초급 업무 대신하는 시대…한은 "경력 사다리 재설계해야"

"AI만의 효과 아닌 복합 변화"…채용보조금 대신 '경력 형성 지원금' 제안

 

한국은행이 AI 확산으로 흔들리는 청년 고용에 대응하려면 사라지는 초급 일자리를 그대로 지키기보다 청년이 경험과 숙련을 쌓을 수 있는 경력 형성 경로를 새로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원 수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채용보조금을 훈련과 멘토링 비용까지 포괄하는 '경력 형성 지원금'으로 바꾸고, 세제가 자동화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실증적으로 따져보자는 방안도 함께 내놨다.

 

오삼일 한은 조사국 고용연구팀장과 오영식 조사역은 18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 보고서에서 AI를 활용해 초급 업무를 자동화하고 신규채용 규모를 조절하는 것이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하면 청년의 경험과 숙련 축적 기회가 줄어들면서 장기적으로 인재 파이프라인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의 최적 선택이 사회 전체의 최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새롭게 짚은 대목은 세제다. AI와 설비에 대한 지출은 투자비용으로 명확하게 인정받는 반면 근로자 훈련과 멘토링, AI 협업형 직무 재설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측정과 지원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비대칭이 남아 있으면 기업으로서는 근로자 역량을 키우는 증강형 AI보다 기존 업무와 인력을 대체하는 자동화를 택할 유인이 커진다. 아제모을루 등(2020)은 미국 조세제도가 노동보다 장비·소프트웨어 투자를 우대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을 넘어선 자동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동에는 소득세와 급여세가 부과되는 반면 장비와 소프트웨어에는 낮은 실효세율과 관대한 감가상각이 적용되면서,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서 근로자만 대체하는 이른바 '그저 그런 자동화(so-so automation)'까지 과도하게 도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AI·소프트웨어 투자와 인력 채용·훈련에 적용되는 실효세율 및 지원제도를 비교해 자동화에 유리한 제도적 기울기가 존재하는지 실증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AI 소프트웨어 구입비뿐 아니라 훈련기간 중 지급한 임금과 시니어의 멘토링 시간, 직무 재설계 비용을 교육훈련 투자로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지원금의 성격을 바꾸자는 제안도 담겼다. 기업이 사회 초년생 채용을 꺼리는 데에는 임금뿐 아니라 교육과 감독에 시니어의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사정이 작용한다. 신규채용 인원만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이러한 인재 양성비용을 충분히 보전하지 못하고 지원기간이 끝난 뒤 고용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 보고서는 지원 대상을 청년의 임금뿐 아니라 멘토링에 투입된 시니어의 근로시간과 현장 프로젝트 운영비, 직무순환 및 평가비용까지 넓히고 지원금 일부를 숙련 향상이나 일정 기간 이상의 고용 유지, 정규직 전환 같은 성과와 연계하자고 제안했다. 멘토링 인력과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업종별 협회나 대학, 훈련기관이 여러 기업의 공통 교육을 맡는 공동훈련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런 제안의 배경에는 AI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고용 영향이 갈렸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이용자가 과업 수행을 AI에 맡기는 자동화 활용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청년고용 감소 폭이 컸던 반면 초안 개선이나 검증에 AI를 쓰는 증강 활용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같은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증강 비중이 가장 높은 4분위 업종의 청년고용은 오히려 다른 분위보다 완만하게 줄었다. 해당 분류는 앤스로픽의 클로드 사용 기록을 분석한 한다 등(2025)의 자료를 업종별 수치로 변환해 활용한 것으로 국내 근로자의 실제 활용 정도를 직접 측정한 값은 아니다.

 

청년고용 위축의 실태도 함께 제시됐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8만 5000개 줄었는데 이 가운데 26만 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개 늘었고 이 중 17만 3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증가했다. 업종과 월별 시점 고정효과를 통제한 삼중차분 회귀분석에서도 업종별 AI 노출도가 백분위수 기준 25포인트 오를 때 50대 고용은 2022년 11월 이후 평균 7.0% 더 늘어난 반면 청년층 고용은 0.6% 줄어 두 연령대의 격차가 7.6%포인트 벌어졌다.

 

다만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를 AI만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신규채용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2019년 36.9%에서 2024~2026년 29.3%로 낮아졌는데 감소세는 챗GPT가 나온 2022년 하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공개채용이 줄고 수시·경력직 채용이 확대되면서 기업이 신규 인력을 뽑아 장기간 육성하기보다 필요한 경험을 이미 갖춘 근로자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방식을 선호해온 결과다. 팬데믹 회복기에 정보통신과 전문서비스 업종에서 크게 늘었던 채용이 되돌려진 영향도 겹쳐 있다.

 

 

재택근무를 비롯한 업무방식의 변화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원격으로 일하려면 작업 절차와 산출물을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고 복잡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 가능한 세부 과업으로 나눠야 한다. 오 팀장 등은 이러한 표준화와 문서화, 모듈화가 원격 협업을 가능하게 만든 동시에 개별 과업을 AI에 맡기거나 자동화하기 쉬운 기반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직업별 AI 노출도와 재택가능지수의 순위를 견줘 보면 스피어만 순위상관계수가 0.74에 이른다. 이매뉴얼·해링턴·팔레(2025)가 미국 대기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재택근무를 할 때 주니어가 받는 피드백과 훈련 기회가 줄어 인적자본 축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종합하면 최근의 청년고용 위축은 AI라는 단일 충격보다 기존의 경력직 중심 채용 확대에 재택근무 확산과 AI 도입이 순차적으로 겹쳐지면서 나타난 복합적인 변화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서는 판단했다. AI를 청년고용 위축의 "원흉"이라기보다 기존에 진행되던 채용과 업무방식 변화를 가속하거나 증폭하는 요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청년층이 장기적으로는 AI 확산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브린욜프슨 등(2025b)의 연구에서는 생성형 AI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경험이 적거나 숙련도가 낮은 근로자에게 더 크게 나타나기도 했다. AI가 우수 근로자의 지식과 업무방식을 전달하는 디지털 코치로 활용되면 청년의 학습 속도를 높이고 숙련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팀장 등은 현재 관찰되는 연공편향이 AI의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효과라기보다 기업이 기존 업무구조를 유지한 채 AI를 초급 업무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하는 도입 초기의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보고서는 "정책의 목적은 AI나 자동화 자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생산성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자동화 투자는 촉진하되 조세와 지원제도의 비대칭성 때문에 기업의 선택이 인력절감형 자동화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의 주니어 직무 재설계와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기술투자와 인적자본 투자 간 유인을 균형 있게 조정할 때, AI는 청년의 진입 기회를 축소하는 기술이 아니라 더 빠른 숙련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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