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이 서류를 꾸며 담보가치보다 많은 대출을 받아내는 수법에 주요 은행 네 곳이 줄줄이 걸려들었다. KB국민·신한·우리·IBK기업은행이 12일 오후 한꺼번에 내놓은 금융사고 공시를 합치면 490억원에 이른다. 사업장과 시기는 은행마다 달랐지만 위조된 서류가 여러 단계의 여신 심사를 그대로 통과했다는 결말은 네 건이 다르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이번에 처음 사고 사실을 알렸고 신한·우리·기업은행은 기존에 공시했던 금액을 대폭 올려 다시 신고했다. 국민은행이 밝힌 사고 금액은 35억 7790만원이다. 사고는 2023년 9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이어졌고 영업점에서 발견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시행사와 허위 분양자 등이 공모해 대출 사기를 했다"라며 "수사기관이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액이 가장 가파르게 불어난 곳은 신한은행이다. 이번에 공시한 사고 금액은 173억 4355만원으로, 지난해 12월 29억 6440만원으로 처음 알린 뒤 올해 6월 69억 6890만원으로 한 차례 올렸다가 두 달 만에 다시 두 배 넘게 상향했다. 최초 공시와 견주면 5.9배 규모다. 이 사고는 2024년 8월 29일부터 10월 16일까지 벌어졌고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드러났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자체 조사와 경찰 수사가 이뤄지면서 사고 금액을 추가로 인지했다"라며 "담보물 매각과 채권 보전 조치 등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정정 공시한 금액은 98억 7000만원이다. 6월 공시 당시 파악한 금액은 40억원 수준이었다. 사고 기간도 2024년 8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로 늘어났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조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수법의 추가 사기 사건이 확인돼 사고 금액과 발생 기간 등을 정정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6월에 47억 8000만원으로 공시했던 금액을 182억 2000만원으로 높였다. 네 곳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두 달 사이 3.8배로 뛰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이 수사 중"이라며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형사 고소 등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시에서 새로 드러난 피해액만 따로 떼어보면 332억원가량이다. 기업은행이 134억 4000만원, 신한은행이 103억 7465만원, 우리은행이 58억 7000만원을 추가로 인식했고 여기에 국민은행 35억 7790만원이 새로 잡혔다. 은행들이 사고를 처음 인지해 공시했을 때 파악한 규모가 실제 피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네 건 가운데 국민·우리·기업은행 사고는 부동산 분양 과정에서 벌어졌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건은 업계에서 할인분양 사기로 부르는 유형으로 파악됐다. 실제 분양가보다 높은 값에 계약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대출을 과다하게 받아내는 방식으로, 시행사와 수분양자가 이면계약으로 할인된 실제 가격을 감춘 뒤 정상 분양가 기준 계약서를 따로 쓰는 이중계약이 대표적이다. 신축 상가는 시세가 형성되기 전이라서 은행이 분양계약서를 근거로 담보가치를 매겨 대출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허위 계약서가 들어오면 실제 담보가치를 넘어서는 돈이 나가고 차주가 갚지 못할 때 원금 회수가 막힌다. 분양 잔금대출도 계약서상 분양가로 담보가치를 산정하는 구조여서 이런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 전반이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국민은행 사고는 시행사가 자금을 융통하려고 가짜 계약자를 내세운 쪽에 가깝다. 분양 실적을 부풀리거나 대출금을 끌어쓰려고 실재하지 않는 매수인을 동원해 중도금이나 담보대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시행사가 자금난에 몰릴수록 유인이 커지는 구조다. 신한은행은 사고 유형을 밝히지 않았으나 담보물 매각으로 회수에 나섰다고 한 만큼 담보가 설정된 대출로 보인다.
허위 서류가 은행 창구를 통과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국민은행은 2024년 12월 상가 분양 대출에서 허위 서류와 내부통제 미비가 겹친 147억원 규모 사고를 냈고, 하나은행은 지난해 4월 계약금과 중도금 이체확인증을 허위로 꾸민 350억원대 잔금대출 사고를 공시했다. 같은 해 5월에도 대출사기 일당이 허위 서류를 낸 64억원 규모 사고가 이어졌다. 농협은행 역시 지난해 2월 16억 5761만원 규모의 외부인 사기를 알렸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6월 사고 당시 "신종 수법이 아니라 기존 유형의 할인분양 사기"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되풀이돼온 부동산 금융범죄인데도 지금 제도로는 미리 걸러내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분양 잔금대출은 계약서에 적힌 분양가가 사실상 유일한 담보 산정 근거인데 시행사와 계약자가 공모하면 이를 검증할 외부 자료가 없다"라며 "전수 실사를 하려면 소액 대출 취급 자체를 접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고를 알아챈 경위를 봐도 은행 자체 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6월에 공시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건은 모두 수사기관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확인됐다. 신한은행 사고 역시 수사가 시작되면서 드러났다. 돈이 나간 지 1~2년이 지나서야 사고를 인지한 것이다.
은행권 금융사고의 성격도 최근 들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해외 법인과 내부통제 관련 사고가 주를 이뤘지만 올해 상반기 공시된 사고는 대부분 허위 서류와 담보 조작을 앞세운 외부인 대출 사기였다. 대규모 횡령 사고를 겪은 뒤 은행들이 책무구조도를 도입하고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직원 비위는 줄었으나 대출 심사 단계로 파고드는 외부 사기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은행 책임을 외부 사기라는 이유로 덮어두기는 어렵다. 부동산 관련 대출은 영업점 접수 단계에서 본부 심사역을 거쳐 여신심의위원회까지 올라가는 다단계 구조인데, 이번 사고들은 그 관문을 모두 통과해 집행됐다. 서류 한 장에 속았다기보다 검증 체계 전반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 대목이다. 미분양이 쌓이고 시행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는 국면일수록 서류를 조작할 유인이 커지는데, 정작 은행 심사는 평상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온 것 아니냐는 의문도 뒤따른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직원들이 여신심사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은행 자체 감사를 통해 들여다볼 방침이다.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행정제재와 수사기관 통보 등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사고 규모는 누적 기준으로 이미 조 단위를 넘어섰다. 최근 6년간 금융권 사고액은 1조 2000억원을 웃돌았고 이 가운데 은행권이 7698억원으로 62%를 차지했다. 은행권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서류 진위 확인과 담보 검증 시스템 고도화, 분양계약 정보 연계 등으로 심사 단계 검증을 강화하고 있으나 갈수록 교묘해지는 사기를 원천 차단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네 은행은 경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담보물 매각과 채권 보전 절차로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종 손실 예상 금액은 아직 어느 은행도 확정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