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보험사, 금융공기업 임직원이 위병소를 통과하는 일이 요즘 부쩍 잦아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들어 두 차례 군복 입은 청중 앞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고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5월 해군본부와 경제·금융교육 협약을 맺었다. KB국민은행은 국방부·경찰청과 함께 장병들이 실제로 당한 보이스피싱 사례를 분석해 군인용 예방 영상을 제작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도 군단이나 사단 단위로 협약을 이어가고 있다. 위문금 전달 위주였던 몇 해 전과 견주면 금융회사의 군 관련 사회공헌은 내용이 꽤 달라졌다.
병영으로 금융교육이 몰려가는 배경에는 병사들의 돈 사정이 짧은 기간에 크게 달라진 사연이 깔려 있다. 올해 계급별 병사 월급은 이병 75만원, 일병 90만원, 상병 120만원, 병장 150만원이고, 여기에 장병내일준비적금에 붙는 정부 매칭지원금이 월 최대 55만원이다. 육군 기준 18개월을 복무하면서 한도를 꼬박 채우면 전역할 때 원금과 지원금, 이자를 합쳐 1000만원대 후반을 손에 쥔다. 먹고 자는 데 돈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매달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여서 스무 살 남짓한 청년 수십만 명이 생애 첫 목돈을 부대 안에서 만들고 있다.
푸본현대생명은 육군 제3군단과 군 장병의 금융역량 강화와 전역 예정 간부의 사회복귀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장병과 간부에게 금융·경제 교육과 재무설계 상담, 보장분석을 제공하고 전역을 앞둔 간부에게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병사들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도박판이 병영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2020년 7월 병사의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된 뒤로 생활관 침상에 누워 주식과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다. 국방부와 각 군이 국회에 낸 자료를 보면 군 내 불법도박 적발 인원은 2021년 402명에서 2024년 478명으로 늘었고 5년간 적발 금액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적발된 사람의 90%가 병사였으며 육군에서만 지난해 사이버도박 혐의로 군사경찰에 입건된 인원이 313명에 이른다.
군 안팎에서는 실제 규모가 공식 집계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역자 30명에게 물었더니 절반이 넘는 17명이 복무 중 도박하는 부대원을 본 적 있다고 답했다. 국방부가 지난 6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에 낸 자료에서 장병 대상 불법도박 자진신고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신고한 사람의 행정·형사 책임을 덜어주는 대신 전문기관 상담과 치료, 채무조정으로 연결해주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부업체들이 군인을 따로 떼어내 영업해온 사실도 금감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상위 30개 대부업자를 들여다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군 장병 대출 잔액은 444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현역병 몫이 242억원으로 54.5%를 차지했다. 한도는 1000만~1500만원, 금리는 연 17.9~20%로 법정 최고금리에 바짝 붙어 있었다. 대부중개업체들은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충성론' '병장론' '현역병사대출' 같은 이름을 내걸고 병사를 끌어모았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군 장병 금액도 2021년 56억원에서 지난해 102억원으로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다음달부터 대부업체가 현역병에게 신용대출을 내주지 못하도록 한국대부금융협회와 표준업무방법서 개정을 협의하고 있다. 교육 체계도 다시 짰다. 금감원과 국방부는 지난 3월 급여가 오르면서 장병들이 도박과 금융사기, 고금리 대출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복무 주기를 셋으로 나눈 교육을 도입하기로 했다. 입대 직후에는 훈련소에서 도박과 고위험 투자의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복무 중반에는 방문교육과 온라인교육으로 신용관리와 금융범죄 예방 역량을 키운다. 전역을 앞둔 시기에는 목돈을 어떻게 굴릴지 재무설계를 돕는다.
금감원이 새로 만든 훈련소용 교육 콘텐츠는 은행 창구를 거쳐 병영에 들어간다. 장병내일준비적금을 취급하는 은행에 이 자료를 배포해 훈련소에서 적금 가입자를 모집할 때 함께 교육하도록 했다. 나라사랑카드와 장병내일준비적금은 20대 남성이 금융회사와 처음 거래를 트는 통로여서 은행권은 오래전부터 군 시장을 놓고 경쟁해왔다. 보험업계에서는 지난 3월 장기복무가 확정된 장교·부사관에게 월 30만원씩 3년간 정부가 같은 금액을 얹어주는 장기간부 도약적금이 시행되면서 간부 대상 자산관리 수요도 함께 커졌다고 본다.
부대 안에서 교육을 맡을 인력을 키우는 작업은 2012년부터 이어져왔다. 금감원은 군 재정장교를 대상으로 금융연수를 해오다 지난해부터 대상을 부사관과 군무원까지 넓히고 횟수도 연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지난해까지 800여 명이 수료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34명이 나흘간 연수를 받았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의 이해, 불법도박 예방 및 건전한 자산관리 과목이 올해 새로 들어갔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이 닿는 상담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 금감원이 5월부터 한국FP협회 재무설계사를 통해 제공하는 1대1 비대면 재무설계 서비스의 올해 모집 인원은 현역병사와 초급간부를 합쳐 120명이다. 현역 병력 규모와 견주면 시범사업에 가깝다.
이재원 푸본현대생명 사장은 "군 장병들이 복무 기간 금융 이해력을 높이고 전역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이번 협약을 추진했다"라며 "앞으로도 군 장병의 금융역량 강화와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