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가 747곳으로 늘었지만 이 중 605곳은 계획을 한 차례 내놓은 뒤 이행 상황을 다시 알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4월 두 달 사이 532곳이 한꺼번에 공시에 참여한 것과 달리 지난달 신규 공시는 6곳에 그쳤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라는 세제 유인에 기대 부풀었던 참여 규모가 정작 얼마나 남을지는 내년 주주총회 시즌에 가려질 전망이다.
6일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월간 기업가치 제고 현황(2026년 7월)'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본공시 기업은 코스피 348곳, 코스닥 399곳 등 747곳이다. 이들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4944조 7000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84.6%에 이른다.
거래소가 함께 배포한 공시기업 명세에서 최초 공시일자를 월별로 집계해보면 참여 확대가 어느 시점에 이뤄졌는지 확인된다. 2024년 5월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2년 가까이 쌓인 공시 기업은 169곳에 불과했는데 올해 3월 한 달에만 403곳이 몰렸고 4월에도 129곳이 더해졌다. 3월 27일 하루에 109곳, 26일에 72곳이 계획을 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생명, 삼성에스디에스 등 삼성 계열 상장사들도 3월 19일 같은 날 첫 공시를 제출했다.
이 시기에 공시가 쏠린 배경에는 올해 시행된 조세특례제한법이 있다. 배당성향 40% 이상 등 요건을 갖춘 고배당기업의 주주가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기업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익배당을 결의한 다음 날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12월 결산법인 주총이 3월 말에 몰려 있다 보니 공시도 같은 시기에 집중됐다. 거래소 집계로 고배당기업 자격으로 계획을 낸 곳은 632곳이며 이 가운데 542곳이 신규 공시 기업이다. 747곳의 72.6%가 세제 요건을 매개로 제도에 들어온 것이다.
시행 첫해라는 점을 감안해 당국이 약식 공시를 허용한 것도 참여 규모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과세특례 요건 충족 사실과 자기자본이익률(ROE)·배당성향 목표, 자본적지출(CAPEX) 목표 같은 핵심 항목만 본문에 적고 상세 계획은 첨부 여부를 기업이 알아서 정하도록 했다.
세제와 맞물린 공시가 얼마나 이어지는지는 후속 공시 실적에 나타난다. 명세상 두 번 이상 공시를 낸 기업은 142곳으로 전체의 19.0%다. 올 1~4월 신규 공시한 542곳 중에서 다시 공시를 낸 곳은 3곳뿐이고 5월 이후 새로 참여한 기업 중에서는 아직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말 이전에 계획을 냈던 169곳은 139곳(82.2%)이 두 번 이상 공시를 제출해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제출 시기를 뜯어보면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들의 가장 최근 공시일자가 3월 68곳, 4월 30곳으로 98곳이 올해 주총 시즌에 걸쳐 있다. 이미 계획을 공시해둔 기업이라도 고배당기업 요건을 채우려면 배당 결의 다음 날까지 다시 공시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거래소 집계로 고배당기업 632곳 중 90곳이 이런 기공시 기업이다. 최초 공시 이후 분기마다 이행 현황을 내온 메리츠금융지주(9회)나 한미반도체(5회)처럼 세제 일정과 무관하게 공시를 이어온 사례는 손에 꼽힌다.

기업 규모에서도 두 집단의 차이가 크다. 지난해 말 이전 공시 기업의 중위 시가총액은 2조 2021억원인 데 비해 올 1~4월 합류한 542곳은 1304억원이다. 전체 747곳 중 시총 2000억원 미만이 387곳으로 절반을 넘고 1000억원 미만도 259곳에 달한다. 코스닥 공시 기업 399곳만 떼어놓으면 218곳이 시총 1000억원에 못 미친다. 공시 기업 시총이 전체 시장의 84.6%까지 올라간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스퀘어 세 곳이 명세 기준 공시기업 시총 합계의 61.4%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들어간 곳도 747곳 중 100곳에 그친다.
공시 참여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2024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공시기업의 누적 주가수익률이 미공시기업을 68.8%포인트 앞섰고 지난해 코스피 공시기업 ROE가 11.2%로 미공시기업(4.1%)을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수익성을 갖춘 기업들이 밸류업 공시에 먼저 나섰다는 해석이다.
내년부터는 약식 공시가 허용되지 않는다. 거래소는 약식 공시가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준비 기간 부족을 감안한 올해 한정 조치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내년에는 고배당기업도 현황 진단과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 평가, 주주 소통을 갖춘 형태로 계획을 다시 써내야 한다. 올해 3월 31일 약식으로 제출했던 서울평가정보가 7월 8일 세부 계획을 보완해 추가 공시한 사례를 거래소가 이번 자료에서 따로 소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거래소는 "자발적인 공시 보완 사례가 확산될 경우 고배당기업의 공시가 보다 내실화되고 투자자와의 소통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9월 중에는 전국 6개 지역에서 공시 책임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저PBR 개선 계획을 포함한 작성 방법을 안내한다.
7월 주주환원 결정은 금융지주사가 이끌었다. 신한지주와 KB금융이 각각 7000억원, 하나금융지주가 2500억원, 우리금융지주가 15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취득·소각을 결정했다. 이들은 모두 2024년에 밸류업 계획을 처음 내고 네 차례 안팎의 후속 공시를 이어온 기업이다. 삼성전자(약 2조 5000억원)를 포함해 90개 상장사가 결정한 지난달 현금배당은 약 7조 4000억원이었다.
시장 지표는 뒷걸음질쳤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7월 31일 3162.13에 마감해 지난해 말보다 75.9% 높은 수준을 지켰지만 6월 22일 사상 최고치인 4276.72와 비교하면 26.0% 낮다.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 13종의 순자산총액도 6월 말 4조 2000억원에서 지난달 말 3조 4000억원으로 8000억원가량 줄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