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보험금을 청구한 한 가입자에게 보험사가 직접 확인할 일이 있다며 연락해 왔다. 약속 장소에 나온 담당자는 보험사 직원이 아니라 손해사정업체 소속이었다. 내 보험 건을 왜 다른 회사가 처리하는지, 진단서와 의무기록 같은 서류를 이 사람에게 건네도 괜찮은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보험금 청구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서류 심사만으로 사흘 안에 지급이 끝나고, 손해액을 두고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만 손해사정 절차로 넘어간다. 자동차보험을 뺀 청구 건 가운데 손해사정이 진행되는 비중은 3% 안팎에 그친다.
보험사가 이 업무를 외부에 맡기는 것 자체는 법이 정한 방식이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손해액과 보험금을 사정하는 업무를 직접 하거나, 손해사정사 또는 손해사정업자를 선임해 위탁하도록 규정한다. 사고 원인과 책임 관계를 조사해 적정한 보험금을 산출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다만 위탁받는 곳이 대체로 보험사 자회사라는 점은 알아둘 만하다. 금융당국 집계로 보험사가 맡긴 손해사정 업무의 상당수가 자회사로 갔고, 이 때문에 독립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개인정보 관리에는 별도의 의무가 따라붙는다. 보험업법 시행령은 손해사정업체가 손해사정서에 건강정보 같은 민감정보를 담을 때 피보험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동의가 없으면 그 정보를 지우거나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하도록 정한다. 주민등록번호가 든 자료도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동의를 받아야 다룰 수 있다. 이 의무를 어기면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과태료 같은 제재를 받는다.
그렇더라도 서류를 반드시 그 업체에 건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손해사정업체에 자료를 내는 것은 절차를 편하게 하기 위한 방식일 뿐 강제 사항이 아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도 된다. 업체 직원을 만났을 때는 손해사정사 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해 어느 보험사로부터 어떤 업무를 위탁받았는지 확인하고, 받아 가는 서류를 어디에 쓰는지 물어두는 편이 좋다. 청구한 사고와 직접 관련 없는 과거 병력이나 다른 진료 기록까지 광범위하게 요구한다면 무엇에 필요한 자료인지 따져볼 만하다.
손해사정이 끝나면 그 결과를 담은 손해사정서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사고와 손해조사 내용, 보험계약 사항, 약관상 보험사가 지급할 책임의 범위가 적힌다. 내용에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으면 10일 안에 정정이나 보완을 요청할 수 있다.
보험사가 정한 업체 대신 가입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고를 수도 있다. 이렇게 소비자가 선임하는 이를 독립손해사정사라고 하는데, 보험사가 동의해 선임한 경우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한다. 선임 여부를 결정할 시간도 넉넉해졌다. 예전에는 보험금 청구 접수 뒤 3영업일 안에 판단해야 했지만, 지금은 청구권자가 요청하면 10영업일까지 늘려준다. 선임할 수 있는 대상도 기존 실손보험에서 손해사정이 필요한 모든 건으로 넓어졌다.
다만 보험사가 이미 손해사정을 마친 뒤 그 결과에 불복해 다시 사정을 받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따로 선임하는 경우에는 비용을 가입자가 낸다. 보험사는 청구 건이 손해사정 대상인지, 가입자가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고 그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선임하지 않으면 보험사 소속이나 위탁받은 업체가 처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도록 감독규정에 정해져 있다. 이런 안내 없이 업체 직원부터 만나게 됐다면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 제도가 마련돼 있어도 실제 선임률은 1%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러 보험사에 나눠 청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제도도 있다. 실손보험을 두 개 이상 가입한 사람이 한 보험사에 청구서와 서류를 내면서 접수대행 서비스를 신청하면, 그 회사가 계약조회로 다른 실손 가입 보험사를 확인해 원본대조필한 서류 사본을 보내준다. 2010년 11월 도입된 방식으로, 서류를 회사마다 따로 떼느라 드는 비용과 수고를 줄이려는 취지다. 서류 사본을 넘겨받은 보험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청구서나 개인정보 동의서를 따로 받지 않는다. 다만 실손을 여러 개 들었다고 보험금을 중복해서 받는 것은 아니고, 각 보험사가 보장 대상 의료비를 비례해 나눠 지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