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없이 비행기 지연만 확인되면 준다…여행자보험 '지수형' 확산

금감원, 여행자보험 주요 분쟁조정사례와 가입 시 유의사항 안내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공편이 5시간가량 지연된 A씨는 여행자보험 항공기 지연보상 특약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귀국편에 걸어둔 특약이 실제 지출한 비용만 물어주는 '실손형'이었는데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이 같은 여행자보험 주요 분쟁조정사례와 가입 시 유의사항을 12일 밝혔다.

 

영수증과 지출 증빙을 요구하는 실손형 특약에서 이런 유형의 분쟁이 반복되는 사이 보험업계는 '지수형' 특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수형은 항공기 지연 시간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약관상 기준을 넘으면 실제 지출과 무관하게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지연 시간이 2시간을 넘으면 4만원, 4시간을 넘으면 6만원, 6시간을 넘으면 8만원을 주는 식이다. 지연증명서에 식비·숙박비 영수증까지 갖춰야 하는 실손형과 달리 탑승권만 제시하면 보험사가 운항 정보로 지연 시간을 확인해 곧바로 보험금을 내준다.

 

실손형 약관의 보상 요건이 소비자 예상과 어긋난 사례는 또 있다. 화산 분출로 귀국편이 결항되자 다른 공항으로 이동해 1시간 30분 뒤 출발하는 항공권을 새로 발권한 B씨는 재발권 비용과 교통비를 받지 못했다. 약관은 '지연·대체된 항공편을 기다리며 발생한 손해'만 보상 대상으로 정하고 있는데 대체편을 빨리 구한 탓에 기다리며 쓴 비용 자체가 없었다. 일정 변경·취소로 물게 된 수수료나 미리 사둔 입장권·티켓 값도 간접손해로 분류돼 보상받지 못한다.

 

지수형은 국내에 등장한 지 오래되지 않은 방식이다. 2024년 7월 보험개발원이 국내 첫 지수형 보험으로 항공기 지연보험의 참조순보험요율을 개발했고, 지난해 2월 삼성화재가 출국편을 대상으로 처음 상품화했다. 이후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이 잇달아 비슷한 특약을 내놓았고 삼성화재는 올해 3월 지수형 보장 범위를 귀국편과 경유편까지 넓혔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항공기 지연 시 보험금을 자동 지급하는 서비스를 귀국편까지 확대했다. 시장이 커진 것도 배경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 10곳의 여행자보험 신계약은 545만 1544건으로 사상 처음 연간 500만 건을 넘었다.

 

지수형이라고 모든 면에서 유리하지는 않다. 정액 지급이어서 실제 손해가 커도 약관상 정해진 금액까지만 받을 수 있고 보험료는 실손형보다 비싼 편이다. 금융당국은 같은 지연 사고에 보험금이 이중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 당시부터 실손형과의 중복 가입을 제한했다. B씨처럼 대체편을 신속히 구해 대기 시간이 짧았던 경우라면 지수형에서도 지연 시간 요건을 채우지 못해 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

 

항공기 지연 외의 담보에서도 소비자 인식과 약관의 간극이 큰 사례가 이어졌다. 여행 중 사고로 시력 교정용 안경이 부서져 휴대품 손해 담보로 보험금을 청구한 민원에 대해 금감원은 약관상 안경이 의치·의족·콘택트렌즈와 함께 신체보조장구로 분류돼 보험의 목적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지급 거절이 부당하지 않다고 봤다.

 

캐리어 관련 분쟁도 두 건 있었다. 항공 위탁 수하물로 부친 캐리어 외부에 스크래치가 생긴 건은 제출된 사진만으로 기능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파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남에게 빌린 캐리어가 파손된 건은 피보험자가 사용·관리하던 재물의 정당한 권리자에게 지는 배상책임을 약관이 보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각 소비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난이나 파손이 아닌 단순 부주의로 잃어버린 물건은 증빙 서류가 있어도 보상되지 않고 현금, 유가증권, 여권과 메모리카드 속 데이터 같은 무형자산도 보상 대상에서 빠진다.

 

가입 단계에서 챙길 대목도 있다. 여행자보험은 보상 시 본인이 부담하는 자기부담금이 붙는데 치료비 같은 인보험은 총 의료비의 일정 비율(예 30%), 휴대품 손해 같은 물보험은 일정 금액(예 10만원)을 떼는 구조여서 자기부담금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낮아진다. 여러 개를 가입해도 손해액을 한도로 보험사들이 나눠 내는 비례보상이 적용돼 보상이 늘지 않고, 질병이나 직업 같은 고지사항을 정확히 알리지 않으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수하물 관련 보장은 알아두면 쓸모가 있다. 위탁수하물이 분실되면 항공사 보상과 별개로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수하물 도착이 늦어지면 지연 시간에 따라 생필품 구매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는데 사치품과 전자기기는 제외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위험 행위와 피보험자의 고의, 전쟁으로 인한 상해·사망은 대부분 보상에서 제외된다"라며 "피보험자가 가입한 보험의 약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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