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크롤링·챗봇 앞세운 금융회사들…소비자보호, 디지털로 진화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들에 공람한 '2025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사례집'에는 우수사례 39건이 실렸는데, 업권은 제각각이지만 관통하는 줄기가 하나 있다. 바로 디지털이다. SNS 여론을 웹크롤링으로 들여다보는 카드사, 영업 현장에 챗봇을 들인 캐피탈사, 휴면보험금을 알아서 보내주는 보험사까지 종이 매뉴얼과 사후 점검에 기대온 소비자보호의 무게중심이 데이터와 시스템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 SNS 댓글까지 긁어온다

A카드는 SNS에 올라오는 소비자 의견을 웹크롤링으로 자동 수집하면서 민원이 접수되길 기다리는 대신, 어디선가 불만이 터지면 그 신호를 먼저 잡아 유관 부서에 넘기고 곧장 조치 요구로 이어간다. 여론이 커지기 전에 끊어내겠다는 발상이다.

 

B생명은 더 직관적인 방식을 택했다. 영업점마다 불완전판매 비율을 매일 신호등으로 띄우는데, 녹색·황색·적색 가운데 한 달 동안 적색이 몇 번 켜졌느냐에 따라 교육과 점검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영업점은 자기 색깔을 매일 들여다보게 되니 긴장을 풀기 어렵다. 미흡사례에서 거론됐던 H은행의 미스터리쇼핑이 평가 대상 부서가 직접 주관하는 구조였다면, B생명은 거꾸로 데이터가 영업점을 평가하는 셈이다.

 

C카드는 대면모집 판매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이상징후를 미리 잡아내고, D증권은 사전협의 의뢰부터 검토와 회신, 이행 결과까지 전 과정을 전산에 남긴다. 말로 오가다 끝나던 협의가 기록으로 쌓이는 것이다. 사전협의 누락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매월 0건을 보고했던 C은행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 영업 현장에 쥐여준 무기, 챗봇

E캐피탈은 현장 직원 손에 실질적인 도구를 쥐여줬다. 대출모집인이 상담 도중 필요한 판매기준을 태블릿 영업시스템에서 바로 검색하도록 자체 챗봇을 붙였는데, 두꺼운 매뉴얼을 뒤적일 일이 없어진 셈이다. 적합성 진단 당일 재실시를 전산에서 막지 않아 위반이 되풀이됐던 G생명과 비교하면, 이쪽은 시스템이 사람의 실수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F은행은 민원 분석을 디지털로 풀어냈다. 민원인 유형과 주요 불만 키워드, 고객응대 직원 검색어까지 끌어다 발생 원인을 정기적으로 쪼개고, 그 결과를 임원 보고와 부서 간 공유로 넘긴 뒤 별도 조직이 제도개선 과제를 뽑아내는 식이다.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고 덮던 기존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 잠자던 보험금, 알아서 깨운다

소비자가 곧장 체감할 만한 변화는 휴면금융자산 쪽에서 나왔다. G생명은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에 휴면보험금 조회 기능을 깔고, 유효계좌가 있는 휴면보험금은 한꺼번에 자동 송금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객이 따로 청구하지 않아도 돈이 알아서 돌아간다. H생명도 계약관리 단계마다 보험금 수령을 안내하고, 숨은보험금 찾아주기 캠페인에 참여한 고객에게는 상금까지 얹어준다.

 

I카드는 소멸 직전인 포인트를 1회에 한해 6개월간 되살려주는 한편, 고객이 지정한 곳에서 포인트가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서비스도 함께 굴린다. 깜박 잊어도 손해 보지 않게 시스템이 챙기는 구조다.

 

◆ 취약계층, 시스템으로 지킨다

고령층 비중이 높은데도 표준 스크립트조차 없는 O생명, 고령 투자자에게 가족 알림 서비스를 두지 않은 T은행은 미흡사례의 대표적 케이스로 언급됐지만, 같은 자리에서 다른 답을 내놓은 회사들도 있다.

 

J은행은 고령 소비자가 원금 비보장 상품에 들면 손익 현황을 본인이 정한 가족에게 알려주는데, 고위험 상품인지 여부와 고령인지 초고령인지에 따라 계약사실 지정인 알림과 영업점장 확인, 투자권유 제한을 다르게 건다. 일률적이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K증권은 한 박자 더 앞으로 나간다. 상품을 만들 때부터 고령자 영향을 따져보고, 가격 변동이 크거나 환금이 어려운 상품은 '투자권유 유의상품'으로 묶어두는데, 그래도 고령 투자자가 가입하겠다고 하면 지점 관리자가 면담으로 위험을 다시 알리고 의사를 확인한다.

 

L은행은 장애인 보호 전담조직을 소비자보호부 안에 새로 만들고 고객자문단에 장애인 패널을 늘렸다. 장애인 차별 점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P생명과는 확연히 다른 관점이다.

 

◆ 거부권을 실제로 쓴 CCO

CCO가 상품위원회에서 거부권을 쥐고 있어도, 실제로 꺼내든 사례는 드물다. 사례집이 M은행을 따로 짚은 이유다. 평가 기간 중 비예금상품위원회에서 CCO가 소비자 권익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일이 세 번 있었는데,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회사 대부분이 0건이라 도드라진 것이다.

 

N은행은 한 달 안에 해피콜 보완이 2건 이상 나온 판매직원의 판매자격을 일시 정지하고, O은행은 자체 미스터리쇼핑에서 70점에 못 미친 영업점에 대해 한 달간 해당 투자성 상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불완전판매를 일으킨 직원에게 특별교육만 시키고 끝낸 미흡사례 편의 H증권과는 강도가 다르다.

 

◆ 디지털화, 어디로 가나

금감원이 공람한 사례집을 보면 뚜렷한 흐름이 확인된다. 사전 점검은 더 촘촘해지고, 사후 관리는 더 자동화되고, 취약계층 보호는 더 맞춤형으로 간다.

 

뿐만 아니라 우수사례로 꼽힌 회사들의 공통점은 시스템을 들여놓는 데서 멈추지 않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를 다음 의사결정에 다시 쓴다는 점이다. 디지털 도구가 장식으로 박제되지 않으려면 사람이 들여다봐야 한다. 시스템은 신호를 보내올 뿐, 그 신호를 의미로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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