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주식 차익 70%를 집 사는 데 썼다…소비에는 1.3%만

한은,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

 

주식으로 차익을 본 한국 무주택 가계는 그 돈의 70%를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7000을 뚫으며 증시가 유례없는 호황이지만, 가계 소비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주요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주식해서 번 돈으로 집 산다"던 그간의 통념이 한국은행 데이터로 확인됐다.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은 7일 '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국내 주식의 자산효과가 주요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고 진단했다. 자산효과란 자산 가격이 오를 때 가계가 여유가 생겼다고 느껴 지갑을 여는 현상이다.

 

이번 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부동산 쏠림이다. 무주택 가계는 주식으로 1원을 벌면 그중 0.7원어치만큼 부동산 자산이 불어났다. 서울 주택 매입 자금 가운데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도 지난해 5월 4.9%에서 올해 1월 8.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김민수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주식시장에서 실현된 이익이 부동산으로 먼저 흘러가다 보니 소비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라고 짚었다. 가계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부동산의 변동성은 주식의 8분의 1 수준에 그친 반면 수익률은 두 배에 달했다. 차익을 소비에 쓰느니 대출까지 끌어다 집 한 채 더 사두는 게 남는 장사였다.

 

부동산으로 흘러간 돈은 결국 소비 시장에 풀리지 않았다. 한은이 가계금융복지조사 가구패널(2012~2024년)을 분석한 결과, 국내 가계는 주식으로 1만원의 자본이득을 거두면 그중 130원만 소비에 썼다. 자본이득의 1.3%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은 3~4%, 일본도 2.2%다. 한국은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계층별로 들여다보면 양상이 갈린다. 청년층과 고령층, 중·저소득층에서는 자산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반면 순자산 4~5분위 고자산층은 주식으로 번 돈의 0.7%만 소비에 활용했다. 현금이 빠듯한 계층은 주식으로 번 돈이 생기면 곧장 소비로 돌리지만, 여유 있는 계층은 굳이 차익을 실현해 쓸 이유가 없다.

 

가계가 들고 있는 주식 규모 자체가 작다는 점도 자산효과를 끌어내린 요인이다. 2024년 기준 국내 가계의 전체 자산 중 주식 비중은 7%에 그쳤다. 부동산의 9분의 1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주식자산 규모도 77%로, 미국(256%)이나 유럽 주요국(184%)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있는 주식자산도 순자산 5분위 가구가 73.2%를 갖고 있어 한쪽으로 쏠려 있다.

 

국내 증시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 역시 한몫했다. 2011~2024년 KOSPI의 월평균 기대수익률은 0.09%로 같은 기간 미국 S&P500(0.53%)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변동성은 오히려 미국보다 10% 높았다. 김 차장은 "수익률은 낮고 변동성은 높다 보니 가계가 자본이득을 언제든 되돌려질 수 있는 일시적 이익으로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스피가 75.6% 오르면서 가계의 주식 자본이득은 429조원에 달했다. 과거 14년 평균의 22배다. 그런데도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건 이 돈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흘러간 탓이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분위기가 바뀔 조짐도 감지된다. 글로벌 AI 수요 확대로 증시가 빠르게 오르면서 주식을 보유한 개인이 2019년 말 612만명에서 지난해 말 1442만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자산효과가 큰 청년층과 중·저소득층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은 앞으로 자산효과가 커질 여지를 보여준다.

 

한은이 더 신경 쓰는 건 주가 조정기다. 자산효과는 상승기보다 하락기에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최근 빚투(빚내서 투자)도 늘었다. 김 차장은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동시에 채무부담이 커지면 경기 하방 압력이 증폭될 수 있다"라며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주식 차익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흐름을 막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추천 비추천
추천
0명
0%
비추천
0명
0%

총 0명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