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퇴직연금 계좌에서도 국채를 매입할 수 있게 됐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정부가 원리금을 지급하는 데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연 복리로 이자가 붙는다. 정기예금 위주로 적립금을 운용해 온 가입자에게는 선택지가 하나 늘었다. 다만 10년이나 20년 동안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조건이 따라붙는 만큼 청약에 앞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2분기 말 553조 9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45조 1000억원 늘었다. 증가분은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유형에 몰렸다. 확정급여형(DB)이 2조 4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DC형은 20조 1000억원, IRP는 22조 6000억원 증가했다. 적립금에서 IRP가 차지하는 비중은 30.0%로 DC형(29.5%)을 처음 넘어섰다. 상품 구성에서도 원리금 보장 잔액이 356조 1000억원으로 1.9% 줄어든 사이 비보장 잔액은 197조 7000억원으로 35.9% 늘었다. 개인투자용 국채 발행량도 첫해 7000억원에서 올해 8월 기준 1조 3000억원으로 늘었다.
① 금리는 4%대 복리다
9월 발행분의 표면금리는 10년물 연 4.415%, 20년물 연 4.570%이고 두 종목 모두 0.35%포인트의 가산금리가 붙는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표면금리와 가산금리를 합한 연 4.765%, 연 4.920%가 연복리로 적용돼 세전 기준 만기 총수익률은 각각 59.28%, 161.31%에 이른다.
총수익률을 만기 연수로 나눈 연평균 5.92%, 8.06%라는 숫자도 함께 소개되고 있으나 이는 단리로 환산한 값이다. 20년물의 161%는 연 4.92%를 20년 동안 복리로 계산한 결과이며, 정기예금 금리와 비교할 때 기준이 되는 숫자 역시 4%대다. 10년물에 1억원을 넣으면 만기에 세전 약 1억 5928만원을 받는다.
가산금리는 매달 새로 정해진다. 2024년 6월 첫 발행 당시 10년물 0.15%포인트, 20년물 0.30%포인트에서 출발해 올해 1월에는 1.0%포인트와 1.25%포인트까지 올랐고 이달에는 두 종목 모두 0.35%포인트가 적용됐다. 표면금리가 전월 발행한 같은 연물 국고채의 낙찰금리를 따르는 만큼 시장금리가 내려간 달에는 가산금리를 올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낮추는 방식으로 합산금리를 맞춰 왔다. 1월 10년물의 만기 적용금리 4.410%와 이달 4.765%를 비교하면 가산금리가 줄어든 이달 조건이 오히려 낫다. 매달 공표되는 발행계획에서 가산금리보다 합산금리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② 중도환매하면 혜택이 사라진다
중도환매는 발행일로부터 1년이 지난 13개월 차부터 신청할 수 있다. 퇴직급여 지급이나 중도인출처럼 불가피한 사유가 생기면 1년 이내에도 가능하다. 이때는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이 적용되지 않고 표면금리를 적용한 단리 이자만 받는다. 중도환매 신청 기간도 매달 10일부터 16일까지로 정해져 있어 필요할 때 곧바로 현금화하기는 어렵다.
원금이 깎이지는 않지만 받는 금액에는 차이가 생긴다. 이달 10년물을 1000만원어치 매입한 뒤 3년이 지나 중도환매하면 표면금리 4.415%를 단리로 계산한 이자를 더해 세전 1132만원을 받는다. 같은 기간 가산금리와 복리를 적용했을 때의 1150만원과 18만원가량 차이가 난다. 7년을 보유한 뒤 환매하면 1309만원으로 복리 기준 1385만원과의 격차가 76만원까지 벌어진다. 보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도환매의 부담도 커진다.
③ 만기와 연금 개시 시점을 맞춰야 한다
55세에 20년물을 매입하면 만기는 75세다. 연금 수령을 시작한 뒤 매년 인출할 금액을 국채에서 마련하려면 중도환매를 거쳐야 하고 그만큼 가산금리와 복리 이자를 포기하게 된다. 은퇴 시점에 맞춰 10년물과 20년물을 나눠 매입하고 나머지 적립금은 정기예금이나 펀드로 운용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④ 예금과 비교하려면 금리 방향까지 살펴야 한다
9월 우리은행 IRP 퇴직연금 정기예금은 1년 만기 연 3.30%, 3년과 5년 만기가 3.20%이고 국민은행은 1년 3.22%, 3년 3.15%, 5년 3.03%로 국채 합산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다. 정기예금은 만기마다 다시 예치하며 그때그때 금리를 반영할 수 있는 반면 국채는 매입 시점의 금리를 만기까지 고정한다. 금리가 더 내려갈 것으로 본다면 국채가 유리하고, 반대 경우라면 만기가 짧은 예금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국채는 퇴직연금 위험자산 투자 한도에 포함되지 않아 DC·IRP 적립금의 100%까지 매입할 수 있다. 주식형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비중을 늘리기 위해 그동안 정기예금으로 채워 온 안전자산 몫을 국채로 대체할 수 있다.
⑤ 세금은 계좌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매입하면 만기 전까지 과세가 이연되고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부담한다. 전용계좌를 이용하면 만기 5년 이상 상품에 한해 2027년 12월 31일까지 매입분, 1인당 총 2억원 한도에서 만기 보유 시 이자소득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IRP 세액공제는 계좌에 납입한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국채를 매입한다고 공제 한도가 추가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청약은 8개사에서만
퇴직연금 계좌에서 청약하려면 신한·하나·NH농협은행과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NH투자증권 등 8개사에 계좌를 두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업자에 퇴직연금 계좌를 둔 가입자는 계좌를 옮겨야 청약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는 판매 준비가 즉시 가능한 사업자를 중심으로 제도를 시행했고 취급 기관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지난달 27일 열린 퇴직연금형 개인투자용 국채 제도 시행 및 시스템 오픈 행사에서 "퇴직연금형 개인투자용 국채 도입을 계기로 국민의 퇴직연금 운용 선택권이 확대되고 국민의 노후 자산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가 가능해지는 한편 국채 수요의 저변 확대도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DC·IRP 고객은 별도의 전용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기존 퇴직연금 계좌로 모바일 앱 신한 슈퍼SOL이나 영업점에서 청약할 수 있으며 최소 10만원부터 10만원 단위로 신청하면 된다. 하나은행은 이달 영업점에서만 청약을 받고 다음 달부터 하나원큐에서도 신청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정부가 9월에 발행하는 개인투자용 국채는 총 2300억원으로 전월보다 800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에서 매입할 수 있는 10년물이 1100억원, 20년물이 650억원이다. 월별 발행 한도가 정해져 있어 청약 총액에 따라 안분 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쌓는 것을 넘어 은퇴 시점까지 장기간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라며 "이번 개인투자용국채 판매를 통해 고객의 장기 자산운용 선택지를 넓히고 은퇴 시점과 자금계획에 맞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라고 말했다.
발행일은 매월 20일이 원칙이며 발행일 전 7영업일 동안 청약을 받는다. 첫 청약은 15일 마감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