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탁결제원이 내년 2월 시행되는 토큰증권 제도를 외부와 차단된 폐쇄형 분산원장을 전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4일 공개한 '토큰증권 분산원장 표준요건 가이드라인'에서 원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을 전자등록기관과 계좌관리기관으로 제한했고, 한 번 발행된 증권을 다른 분산원장으로 옮기는 것도 금지했다. 수수료나 시뇨리지 목적의 가상자산 생성·거래 역시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예탁결제원 서울사무소에서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3차회의를 열고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조각투자 같은 신종·비정형증권에 머물러 있던 토큰화를 주식과 채권, 펀드 등 기존 정형증권까지 넓히는 것이 핵심이다. 예탁원 가이드라인은 이 발표의 별첨 자료로 함께 공개됐다. 기술·인프라 요건과 전자등록업무 요건 두 갈래 아래 40개 세부요건이 담겼고 증권사 등이 제출해야 할 증빙서류만 18종에 이른다.
참여 자격 제한이 가장 강도 높은 대목이다. 분산원장에는 전자증권법상 권한을 가진 전자등록기관과 계좌관리기관만 노드로 들어올 수 있다. 계좌관리기관에 해당하더라도 고객계좌부를 개설하지 않고 합의·검증 노드만 제공할 목적이라면 참여가 막힌다. 블록체인 기업이 검증 노드를 운영하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은 처음부터 배제된 것이다. 다만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제공하는 '분산원장 운영자'에는 별도 제한을 두지 않아 플랫폼 사업자의 참여 통로는 열어뒀다.
원장 구성에는 최소 3개 이상의 독립된 기관이 합의 노드로 참여해야 하며 단일 기관이 합의·검증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증권사 한 곳이 단독으로 토큰증권 원장을 꾸릴 수 없다는 의미다. 요건에 미달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그 시점부터 해당 원장은 법상 부적합한 전자등록계좌부가 되고 신규 전자등록이 정지된다. 일정 기간 안에 복구하지 못하면 이미 발행된 토큰증권을 기존 전자증권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종목은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유통되고 발행 이후 다른 원장으로 일부 또는 전부를 옮기는 것도 금지된다. 예탁원은 이 규칙을 전자증권법 시행령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금융위가 같은 날 제시한 3단계 로드맵의 종착점은 스테이블코인 등을 결제수단으로 삼는 온체인 결제다. 정책방향 자료에도 토큰증권 원장과 스테이블코인 원장을 시스템적으로 잇는 상호운용 기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명시됐고 브릿지 기관을 통한 연계와 메인넷 직접 연계 등 여러 방식을 이론적·실증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과제가 함께 담겼다. 1단계에서 원장 간 이동과 가상자산 이용을 차단해 놓고 3단계에서 이를 다시 열어야 하는 만큼 시행령 문안을 어떻게 다듬을지가 남은 숙제다.
기술 선택지도 사실상 좁혀졌다. 예탁원은 시장 준비 상황을 파악해 하이퍼레저 베수(Besu)와 패브릭(Fabric), 아발란체(Avalanche)와 연계할 수 있도록 'KSD 토큰증권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7월 기준이다. 이 세 가지 외에 새로운 기반 기술을 도입하려는 증권사는 예탁원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고 연계와 노드 참여를 위한 기술 지원도 직접 제공해야 한다. 심사는 분산원장 연계 신청과 서류심사, 연계기능테스트를 거쳐 정식 등록으로 마무리된다. 발행등록과 계좌대체, 질권·압류 설정, 토큰증권과 기존 전자증권 간 전환, 총량검증 등 10개 업무가 시나리오 테스트 대상에 올랐다.
토큰화 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법 시행 시점인 내년 2월 1단계에서는 펀드와 채권의 경우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방식부터 토큰화하고, 주식은 전자증권으로 발행된 비상장주식을 예탁원이나 신탁업자에 신탁한 뒤 수익증권을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방식을 쓴다. 조각투자는 권리관계가 단순하고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1단계부터 공모 증권의 토큰화를 허용한다. 2단계에서 공모 증권 전반으로 범위를 넓히고 3단계에서 온체인 결제를 구현한다.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장내시장 토큰화 파일럿 테스트도 병행된다.
조각투자 모범규준도 함께 나왔다. 샌드박스 운영 당시 금지됐던 기초자산 집합화(풀링)를 조건부로 허용해 종류와 권리가 같고 집합화 기준과 목적이 명확하며 부실자산이 섞이지 않는다면 여러 자산을 묶어 하나의 조각투자증권으로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장래매출채권처럼 불확실사건에 연계된 자산도 안정적인 기초 법률관계가 있고 신용보완 등 투자자 보호조치가 갖춰지면 기초자산으로 쓸 수 있다. 공모 때 1인당 청약한도는 개별 특성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나 3000만원과 발행금액의 5% 가운데 작은 금액이 표준 예시로 제시됐다. 특정인에게 물량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투자자 배정과 균등배정의 최소 비율을 내규에 미리 정해두도록 권고했다. 이 모범규준은 현행 전자증권 형태의 조각투자에도 즉시 적용된다.
유통 부문에서는 토큰증권만을 위한 별도 인가체계를 두지 않기로 했다.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매매 인가를 받은 증권사와 장외거래소는 인가받은 업무 범위 안에서 추가 인가 없이 토큰증권을 취급할 수 있다. 다만 장외거래소가 토큰증권 거래를 지원하려면 금융감독원과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 장외거래소에서 일반투자자의 거래한도는 거래소별 연간 순매수액 1억원으로 정해졌다. 지금까지 전문투자자 간 다자간 중개만 허용돼 온 채무증권에 대해서도 장외거래소 인가단위가 새로 만들어진다. 반면 투자계약증권은 유통성 확보 방안을 연구용역으로 검토한 뒤 인가단위 신설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아닌 발행인이 자신이 발행한 증권의 고객계좌를 직접 개설·관리하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등록요건은 자기자본 40억원과 계좌관리·내부통제 전문인력 각 1명, 전산 전문인력 2명으로 정해졌다. 투자중개업 40억원, 투자매매업 500억원 등 기존 계좌관리기관의 자본요건을 참고한 수준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라며 "증권의 발행, 거래, 청산, 결제, 권리행사, 기초자산 등 자본시장 전체 가치사슬을 하나의 디지털 자본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연결하겠다"라고 말했다.
토큰증권 발행이 허용되는 증권의 범위와 장외거래소 인가단위 신설,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등록요건 등 하위법규 사항은 이달 말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하위법규 개정안에 담겨 입법예고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