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업은행이 KDB생명을 넘기려면 1조원 규모의 자본을 다시 넣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옛 금호생명을 떠안은 뒤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인수로 이미 2조원을 투입했는데도, 회사의 자본 구조를 뜯어보면 그만한 돈을 더 넣지 않고서는 거래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13일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한국투자금융지주를 KDB생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산은이 보유한 보통주 1억 1632만 2058주로 지분율은 99.75%다. 지난 7일 마감된 본입찰에는 한투지주와 한화생명, 흥국생명이 참여했다.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를 가늠할 근거는 지난 5월 말 정정 공시된 1분기 보고서에 담겨 있다. 1분기 말 KDB생명의 지급여력(K-ICS)비율은 경과조치를 적용하면 186.10%지만 적용 전으로는 74.54%에 그친다. 요구자본이 1조 4165억원인 데 반해 가용자본은 1조 558억원에 머물러 금융당국 권고치인 130%를 맞추려면 7856억원이 모자란다.
자본의 질을 들여다보면 부담이 더 커진다. 경영공시에 따르면 1분기 말 경과조치 적용 전 기본자본은 마이너스 3566억원으로, 손실을 가장 먼저 흡수해야 할 자본이 오히려 마이너스 상태다. 가용자본 1조 558억원은 전부 보완자본 1조 4124억원이 떠받치고 있는데, 이 가운데 7520억원은 해약환급금 부족분에서 나온 항목이라 순수한 보완자본은 6604억원에 그친다. 요구자본을 기준으로 산출한 기본자본 K-ICS 비율은 마이너스 25.1%다. 당국 권고 수준인 50%까지 끌어올리려면 1조 649억원이 필요한데, 기본자본은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으로 채울 수 없어 대주주가 현금을 넣는 유상증자 외에 방법이 없다.
매각 사정에 밝은 관계자도 "KDB생명의 건전성 지표를 시장이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1조원가량의 증자가 불가피하다"라며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상 과정에서 규모와 시기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이 매각 전 자본을 넣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은 지난 4월 매각 공고 때부터다. 당시 산은은 나라장터에 올린 공고문에서 "KDB생명에 대한 사전 자본확충이 이뤄지는 경우 대상주식의 수 및 지분율 변동이 있을 수 있으나, 추가로 보유하게 되는 주식을 포함해 보유주식 전량을 매각한다"라고 명시했다. 인수 후보의 자금 부담을 덜어 주려는 장치였는데, 그 규모가 1조원 수준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말 5000억원을 넣었지만 효과는 한 분기 만에 상당 부분 희석됐다. 경과조치 적용 후 K-ICS 비율은 지난해 말 205.73%에서 1분기 말 186.10%로 19.63%포인트 내려앉았다.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보험위험액과 금리위험액이 늘어 요구자본이 848억원 불어난 반면, 경과조치 일부가 해지되며 가용자본은 178억원 줄었기 때문이다.
산은은 그동안 KDB생명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 않았다. 2010년 칸서스자산운용과 함께 조성한 케이디비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와 이 사모펀드가 지분 전량을 보유한 케이디비칸서스밸류유한회사를 거쳐 간접적으로 지배해 왔다. 산은이 직접 대주주가 된 것은 사모펀드 존속기간이 끝나 자회사 편입 절차를 마무리한 지난해 3월 21일부터다. 그 이전의 증자는 두 법인 명의로 이뤄졌고, 산은은 사모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댔다.
2010년 인수 이후 산은이 넣은 돈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2조원을 넘어선다. 2010년 3월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3300억원을 투입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같은 해 9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서 3700억원을 추가로 인수했다. 2018년 1월에는 3043억원, 2023년 9월 1000억원, 2024년 6월 2990억원, 지난해 12월 5000억원을 연달아 넣었고 2023년 5월 KDB생명이 발행한 216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도 전량 인수했다. 이를 모두 더하면 2조 1193억원이다.
산은이 자금을 넣을 때마다 무상감자가 뒤따랐다. 2010년 3월 증자로 7313억원까지 늘었던 자본금은 다섯 달 만인 그해 8월 3.17대 1 무상감자를 거치며 2307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11월에도 6대 1 무상감자로 자본금을 831억원까지 낮춘 뒤 12월 5000억원 증자로 5831억원을 회복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잉여금 9457억원 가운데 9058억원이 감자차익이었다.
한편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는 확인 실사와 가격·자본확충 조건 협상, 주식매매계약 체결이 남아 있다.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변경 승인 심사도 통과해야 한다. 2020년 우선협상대상자였던 JC파트너스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승인을 받지 못했고, 2023년 하나금융지주는 실사를 마친 뒤 추가 자본 부담을 이유로 인수를 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