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성 보험 가입자에게서 2년치 보험료를 미리 받아 챙긴 설계사가 영구 거래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설계사 손을 거친 계약 가운데 해지됐거나 해지를 앞둔 것만 420건에 이른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는 완전판매 실천 협의회가 이 사례에 영업제재를 확정했다고 알리면서 위반 행위와 처분 수위에 적용 형법 조문까지 적시해 영업채널에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이 설계사는 여러 고객에게 2년 만기 저축성 보험을 권하면서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도록 유도했다. 선납금을 자기 통장으로 받고는 10%를 얹어주겠다고 해 목돈을 손에 쥐었고 그 돈으로 매달 보험료를 대신 넣어 계약을 굴렸다. 같은 상품을 이런 식으로 수년간 팔아왔다.
제재는 보험사기로 분류되면서 고의 위반에 해당하는 2개월 영업정지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해지 및 해지예정 계약 420건이 가중 사유로 한 단계, 완전판매실천협의회 심의로 다시 한 단계가 더해지며 영구 거래정지로 결론이 났다.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으로 처벌받으면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설계사가 개인 휴대폰으로 고객 정보를 다루다 분쟁조정까지 간 사례도 있다. KB라이프생명이 처리한 민원 내용을 보면 계약 서명을 진행하던 GA(법인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가 카카오톡 오픈채팅창에 계약자 이름을 넣고 검색하다가 동명이인 계정을 계약자로 착각해 서명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의 배우자가 전화를 걸어오자 설계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상대는 보상을 요구하며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회사는 해당 인물의 정보를 고객 데이터베이스에 담아둔 적이 없고 회사 시스템이 아니라 설계사 개인 단말에서 나간 메시지라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해당 GA에는 메신저로 고객 정보를 보낼 때 수신자를 확인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메트라이프생명에서는 계약자가 개인신용정보 처리 동의서와 변액적합성진단지에 서명한 적이 없다며 낸 보험료를 돌려달라는 민원을 냈다. 확인해보니 설계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로만 확인한 뒤 동의서를 스스로 작성한 것이었다. 이 회사는 청약 단계마다 필요한 서류의 작성 지침을 어기는 일이 이어지자 심의 상정 기준을 경고에서 견책까지로 올렸다.
보험업법이 금지하는 특별이익 제공은 보험료 대납에서 사은품, 공사비 대납까지 뻗어 있다. 법이 허용하는 한도는 연간 납입보험료의 10%와 3만원 가운데 적은 금액이다.
신한라이프가 영업채널에 주의를 환기한 위반 사례에는 약사나 의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에게 고액 연금보험을 팔면서 실적을 위해 보험료를 대신 내준 경우가 담겼다. 월납 1000만원짜리 계약에 총 7200만원을 대납한 건도 있다. 베이비페어나 육아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고객에게 어린이보험을 팔며 카시트와 유모차, 고액 상품권을 건넨 경우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를 대신해 승강기 공사비 700만원을 시공사에 직접 넣어준 경우도 나온다.
건강한 고객이 굳이 비싼 상품에 가입하는 일도 경고 대상에 올랐다. 라이나생명은 일반심사로 들어갈 수 있는 고객이 더 비싼 간편심사 보험에 가입해 불완전판매가 된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설계 전에 일반심사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라고 안내했다. 계약일로부터 3개월 안에는 의적 심사를 거쳐 일반심사 보험으로 갈아탈 수 있고 이때 낸 보험료는 전액 돌려받는다. 외국인이나 고령자, 청각장애인에게 통역이나 수화 없이 복잡한 상품을 설명하는 관행과 종신보험을 재테크 수단처럼 말하는 화법도 함께 걸렸다.
신한라이프는 위규 유형에 따라 제재 일수를 아예 정해뒀다. 무동의와 미자필, 부당승환, 종신보험을 저축보험으로 안내한 상품 오안내는 건당 15일 모집정지이고 허위 계약과 해피콜 대리 수행, 허위 보완 녹취는 건당 5일에서 시작해 최대 해촉까지 간다.
KDB생명은 상법 731조와 대법원 판례를 들어 사망 담보가 붙은 계약에서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데 피보험자 자필서명이 빠지면 계약이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된다고 안내했다. 나중에 서명을 채워 넣는 보완도 되지 않아 계약을 취소하고 새로 가입시킨 뒤 영업제재를 상정한다.
각 사가 실제 처분 사례를 이렇게 공유하는 데는 GA 채널이 커진 사정이 깔려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 한 명의 위규가 수백 건 계약 해지로 번지면 회사가 떠안는 손실이 크다"라며 "처분 사례를 그대로 보여주는 쪽이 규정을 나열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