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필·리셋·충전·월렛…보험사들의 새로운 마케팅 용어 됐다

  • 등록 2026.08.11 08: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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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 '리셋월렛'·DB '10년마다 충전'·하나 '무한리필'…같은 말 다른 구조
되살아나는 대상이 치료비 한도인지 사망보험금인지부터 갈려

 

보험 판매 현장에 리필과 충전, 월렛, 리셋 같은 말이 자리를 잡았다. 한도를 다 쓰면 다시 채워준다는 뜻으로 붙는 표현인데, 회사마다 되살아나는 대상과 주기가 달라 이름만 봐서는 무엇이 어떻게 복구되는지 알기 어렵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가 이런 표현을 상품 이름이나 판매 논리로 쓰고 있다. 흥국화재는 상품명에 리셋과 월렛을 함께 넣었고, DB손해보험은 10년마다 리필된다며 10년마다 10억원이 충전된다고 안내한다. 삼성화재는 10년마다 리필되는 치료비를 신상품 특징으로 내세웠고, 하나손해보험은 매년 그리고 매회 보장이 무한리필된다고 소개한다. 신한라이프는 아예 상품 이름을 리필종신보험으로 지었다.

 

이 표현이 퍼진 계기는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국화재가 플래티넘 건강 리셋 월렛을 내놓으면서 보장 한도 복원 구조를 앞세웠다. 암과 뇌·심장 질환 수술, 항암치료, 간병비, 상급병실 이용 같은 비급여 의료비를 담보별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통합 한도 10억원으로 관리하다가, 보장 잔고가 남아 있으면 20년 갱신 시점에 한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회사는 당시 보험에 통장 개념을 접목해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유연하게 보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월렛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위험률 산출에는 코퓰러 기법을 적용했는데, 암뇌심 치료와 상급병실 일당, 간병인 사용 일당을 함께 가입했을 때 지급금이 10억원을 넘길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손보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는 지난해 8월 6일 이 가운데 금액 한도 리셋 개념에 배타적사용권 6개월을 부여했고 위험률 산출 방식에는 9개월을 줬다. 다만 3대 질병 비급여 치료를 통합 한도로 묶어 보장을 유연화한 부분은 배타적사용권 대상에서 빠졌다. 두 배타권은 각각 올해 2월 5일과 5월 5일 만료됐다.

 

지금 리필이라는 말을 쓰는 상품 대부분은 치료비나 보장 한도가 되살아나는 구조다. 신한라이프는 대상이 사망보험금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지난 5월 판매를 시작한 리필종신보험은 암 진단을 받으면 가입금액의 100%를 진단비로 지급하고 이후 가입금액의 100%를 사망보험금으로 다시 채워준다. 10년납 완납 시점 해약환급률은 일반심사형 집중납입형 기준 최대 115.4%다.

 

주기도 갈린다. 하나손해보험은 매년과 매회를 내걸어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는 반면 DB손해보험과 삼성화재는 10년을 기다려야 한도가 채워진다. 흥국화재는 갱신 시점이 기준이어서 갱신 주기가 얼마인지에 따라 대기 기간이 달라진다.

 

삼성화재가 지난달 6일 출시한 온통 보장은 암과 비급여암, 뇌·허혈성, 순환계, 간·폐·신장, 근골격계 치료비를 10년 단위로 나눠 보장한다. 비급여암과 간·폐·신장은 10년마다 최대 6억원, 근골격계 통합보장은 10년마다 최대 1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나손해보험이 무한리필이라고 소개한 하이클래스 암주요치료비는 특정 회사만 파는 담보가 아니다. 여러 손보사가 같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고, 암 수술이나 고가 비급여 치료를 받으면 매년 정해진 한도 안에서 반복 청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기존에 있던 담보에 새 이름을 붙인 셈이다.

 

리필과 충전, 월렛은 약관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약관에는 지급 사유와 연간 지급 횟수, 보장 기간으로만 적힌다.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붙인 표현인 만큼 실제 조건은 상품마다 따로 들여다봐야 한다.

 

되살아나는 시점이 언제인지가 특히 중요하다. 10년 주기 상품이라면 40대에 한도를 소진한 가입자는 50대가 되어야 다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반복 청구가 가능한 담보라도 연간 1회처럼 횟수 제한이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표현이 늘어난 배경에는 시장 사정이 있다. 보험연구원은 올해 생명보험 수입보험료 성장률을 1.0%, 손해보험 원수보험료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지난해 증가율이 각각 9.3%와 5.8%였던 것과 견주면 크게 낮아진 수치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보험사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국내 보험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진입해 신규 수요를 크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담보 구조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상품성을 알기 쉽게 전달할 표현을 찾게 된다"라며 "포화된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열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성태 stlee@ra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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