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들이 이용자가 해외에 머무는 동안 국내에서 벌어지는 부정결제를 스스로 막아둘 수 있는 선제차단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KB국민카드와 현대카드 등이 이미 서비스를 시작했고 하나카드와 신한카드는 이달 말 시행을 예고했다. 나머지 카드사들은 하반기 중 시스템 구축을 마칠 계획이어서 올여름 휴가철에는 카드사별로 이용 가능 여부가 갈린다.
해외 여행이나 연수, 근무로 국외에 머무는 사이 국내에서 카드가 긁히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 서비스 확대의 배경이다. 금융감독원이 24일 공개한 여름 휴가철 신용카드 분쟁사례를 보면 A씨는 해외 체류 중 국내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전자제품 500여만원이 2건에 걸쳐 결제되는 피해를 입었다. 해외 유심칩을 쓰고 있어 국내 번호로 발송된 결제알림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고, 뒤늦게 카드사에 분실·도난 신고를 했을 때는 법령과 약관이 정한 보상처리 기간 60일이 이미 지나 있었다.
새 서비스는 국내 온라인·오프라인 결제와 현금서비스를 나눠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외 직구 같은 온라인 거래는 열어두고 국내 오프라인 결제만 막는 식의 맞춤 설정이 가능하고 1회·1일 이용한도나 심야 거래차단 시간대도 정할 수 있다. 카드사 모바일 앱과 고객센터,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한 번 신청으로 계속 적용된다. 카드사별로 따로 신청해야 하고 일부 카드사는 하반기 중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출시한다.
해외여행 중 카드를 잃어버린 B씨는 범죄자가 50만원을 결제하는 동안 아무런 문자를 받지 못했다. 해외 유심칩을 쓰고 있던 탓에 국내 번호로 가는 알림 SMS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 부정결제로부터 3시간이 흐른 뒤 8건, 40만원의 결제가 추가로 발생하고 나서야 카드사가 부정거래 패턴으로 판단해 승인을 거절했다. 금감원은 출국 전에 알림 수단을 카카오톡이나 카드사 앱 푸시로 바꿔두고, 휴대전화번호를 변경했다면 카드사 앱에서 번호를 갱신할 것을 당부했다. 카드사 앱을 미리 내려받고 분실신고센터 전화번호를 저장해두면 사고 발생 시 신고가 빨라진다.
국내에 머무는 이용자가 해외에서 발생한 부정결제에 노출되는 반대 상황도 흔하다. C씨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새벽에 1800달러가 결제된 사실을 알림 문자로 확인하고 신고했다. 다만 비밀번호 입력이나 휴대폰 인증이 동반된 본인인증거래는 회원의 비밀번호 관리책임이 인정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오프라인·현금서비스와 이용국가, 한도를 개별 설정하는 해외사용 안심설정 서비스, 카드사가 이용자 동의를 받아 법무부 출입국사무소로부터 출국 여부만 넘겨받아 의심거래 탐지에 활용하는 해외출입국 정보활용 서비스가 대비책으로 꼽힌다.
보상 문턱에서 걸러지는 유형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해외 키오스크에서 교통승차권을 사다가 비밀번호를 훔쳐본 범죄자에게 카드를 소매치기당한 D씨는 다른 ATM에서 450만원이 인출됐지만 비밀번호 입력거래라는 이유로 브랜드사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는 자판을 가려야 하고, 한적한 곳에 설치된 사설 ATM은 마그네틱 선을 복제하는 스키머나 키패드를 촬영하는 불법 카메라가 달려 있을 수 있어 피하는 편이 낫다. 노점상이나 주점에서 점원이 카드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 IC칩을 떼어낸 뒤 다른 카드에 옮겨 심는 수법도 보고되고 있어 결제 과정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증빙자료를 갖추지 못해 보상을 놓치는 사례도 있다. 해외출장 중 출장지 인근 식당에서 740만원 상당의 결제 4건이 발생했다고 신고한 E씨는 현지 경찰 신고내역이나 결제시점 위치정보 같은 자료를 내지 못해 피해구제를 받지 못했다. 신용카드 개인회원 표준약관 제40조는 회원과 카드사가 분실·도난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용자에게도 협조 의무가 따른다.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현지 수사기관에 신고해 사건사고 사실확인원(police report)을 발급받은 뒤 귀국해서 카드사에 제출해야 한다.
가족에게 카드를 빌려준 경우도 보상 대상에서 빠진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자녀에게 본인 명의 카드를 건넨 F씨는 자녀가 카드를 분실해 340만원의 부정결제가 났지만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5조와 신용카드 개인회원 표준약관 제5조의 양도·대여 금지 규정에 걸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가족이 함께 쓸 카드가 필요하다면 가족회원 카드를 따로 발급받는 편이 안전하다.
국내에 머무는 동안에도 무인점포 이용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키오스크에 카드를 꽂아둔 채 귀가한 G씨는 제3자가 금은방 등에서 770여만원을 7건에 걸쳐 결제한 뒤에야 분실 사실을 알아차렸고 카드 관리책임에 따라 본인 일부 과실이 적용됐다. 카페에서 자리를 맡아두려고 가방이나 지갑을 테이블에 두었다가 잃어버린 경우도 소비자 귀책사유로 인정된다. 여러 금융회사의 카드를 한꺼번에 분실했다면 카드사 앱의 타사 카드 분실신고 메뉴나 금융결제원 어카운트인포 앱을 통해 일괄신고를 할 수 있다.
방학을 맞아 180만원짜리 온라인 강좌를 6개월 할부로 결제했다가 환불을 거절당한 H씨 사례처럼 온라인 콘텐츠 결제 분쟁도 이어진다. 할부거래법상 할부항변권은 구매계약의 무효·취소·해제·해지나 미제공이 입증돼야 행사할 수 있어 강의가 이미 개시된 뒤에는 카드사가 서비스 품질을 직접 판단하기 어렵다. 계약불이행이나 환불을 둘러싼 분쟁은 한국소비자원 상담·피해구제(국번 없이 1372)를 신청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