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15일 채무자가 모르는 사이 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하는 통로로 쓰여온 지급명령 공시송달 특례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특례가 사라지면 금융회사가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연체채권을 붙들고 시효를 늘려온 관행부터 정리 수순을 밟게 된다.
금액이 작을수록 시효를 이어갈 실익이 사라지는 구조인 만큼 상각채권을 사들여 장기 추심으로 수익을 내온 유동화전문회사와 대부업계도 매입 가격을 다시 따져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급명령은 채권자가 법정에 나가지 않고도 강제집행 권원을 받을 수 있는 약식 절차다. 민사소송법 제462조 단서는 절차가 간이하다는 이유로 지급명령에서 공시송달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는데, 2014년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을 고치면서 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 유동화전문회사 등 26개 금융기관·공공기관에만 예외를 열어줬다.
채무자 주소를 확인하지 못해도 법원 게시판에 공고만 하면 송달 효력이 생기다 보니 갚을 능력이 사실상 없는 취약계층 채무자의 빚까지 기계적으로 시효가 연장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확정된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져 3년, 5년짜리 단기 시효 채권도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행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특례 폐지 이후 채무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채권은 지급명령으로 시효를 잇는 길이 막힌다. 남는 방법은 대여금 청구소송인데 비용 부담이 다르다. 지급명령 인지대는 본안 소송의 10분의 1이고 송달료도 당사자 1인당 6회분으로 소송의 15회분보다 훨씬 적다. 여기에 소송으로 가면 변론기일 대응까지 떠안아야 한다.
원금이 적은 채권일수록 이 비용을 들여 시효를 붙잡을 이유가 없어지고, 금융회사로서는 시효를 완성시켜 장부에서 지우는 편이 낫다는 판단으로 기울게 된다.
금융위원회가 9월 중 시행하겠다고 밝힌 금융기관채권 대손인정업무세칙 개정도 같은 방향으로 압박을 더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회사는 개인금융채권의 소멸시효가 처음 돌아오는 시점에 시효를 완성한다는 조건을 지켜야 대손인정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법상 손실로 처리해 법인세를 이미 덜 낸 상각채권을 10년, 20년씩 붙들고 추심하던 관행에 세금이라는 비용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금융회사별 개인금융채권 소멸시효 완성 실적을 보고·공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올해 상반기 실적부터 공개하고, 회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따져 시효 연장 여부를 정하도록 9월까지 회사별 내규에도 반영하게 할 방침이다.
부실채권(NPL) 시장은 가격 산정의 전제부터 달라지게 됐다. 장기 연체채권의 값어치는 남은 추심 기간과 회수 확률을 곱해 매기는데, 시효 연장이 어려워지면 이 기간부터 짧아진다. 개인 무담보 채권을 원금 대비 몇 % 수준에 사들인 뒤 시효를 거듭 연장하며 회수해온 방식은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가 대손인정을 받으려고 시효를 완성시키는 쪽으로 움직일 경우 시장에 나올 매물 자체가 줄어들 여지도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장기 연체의 늪에 빠진 채무자의 재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무분별한 시효 연장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 관련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상환 능력이 희박한 채무자에게까지 기계적으로 소멸시효 연장을 위한 지급명령을 신청해 장기간 추심하는 잘못된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특례법 개정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해 언제 시행될지 정해지지 않았다. 대손인정업무세칙 개정과 공시 시스템 도입은 법을 고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9월부터 적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