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8일 서울 외환시장 주간 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29.7원 내린 1498.5원에 마감하며 두 달여 만에 1500원 밑으로 내려왔다. 종가 기준으로 1500원선을 밑돈 것은 5월 15일 이후 37거래일 만이다. 7월 1일 장중 1559원까지 올랐던 것과 견주면 일주일 남짓 동안 낙폭이 60원에 이른다. 다만 9일에는 4.9원 오른 1503.4원에 개장해 하루 만에 다시 1500원 위에서 거래되는 모습이다.
8일 원·달러 환율은 오전만 해도 상승 압력을 받았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며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삼성전자 실적 발표 뒤 외국인이 반도체 포지션을 줄인 영향이 겹쳤다. 오후 들어 방향이 바뀐 데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대와 외환당국의 개입 추정 물량이 작용했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단기 되돌림을 넘어 하락 쪽에 무게를 싣는 재료도 쌓여 있다.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본격적으로 환전되기 시작하면 원화 매입 수요가 커진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반도체 기업이 8월 중순 법인세 납부를 앞두고 최대 400억달러를 환전해야 하고 하반기 800억달러, 내년에는 1000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 자금도 필요하다고 봤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중을 늘리고 7월 6일부터 외환시장 운영 시간이 24시간으로 확대된 것도 투기적 달러 매수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씨티은행은 이런 수급을 근거로 향후 3개월 안에 환율이 1500원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도 이번 하락을 원화 강세로의 추세 전환으로 읽기는 이르다. 상반기 내내 원화는 경제 여건과 따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일 내놓은 국제수지 잠정치를 보면 5월 경상수지 흑자는 386억 1000만달러(약 58조 6000억원)로 3월(379억 3000만달러)을 제치고 월간 사상 최대를 새로 썼고 1~5월 누적 흑자는 1412억 8000만달러로 지난해 연간 규모(1230억 5000만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유성욱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6월에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1000억달러를 넘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된다"라며 "연간으로도 전망치인 2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가 이만큼 쏟아졌는데도 연초 1450원 안팎이던 환율은 7월 초 1550원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달러인덱스가 3% 오르는 데 그친 사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8% 빠지며 주요 통화 가운데 약세 폭이 가장 컸다.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은 게 핵심이다.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 쌓아둔 재투자수익은 경상수지 흑자를 키웠지만 국내에 달러를 공급하지는 않았다. 이 금액은 1~4월에 1년 전보다 124% 늘었다. 수출기업이 받은 달러도 원화로 바뀌지 않은 채 거주자외화예금에 두 달 연속 쌓였고 외국인은 6월 한 달 305억달러, 7월 1~2일 이틀 동안 39억달러어치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국제금융센터는 반도체발 경상수지 흑자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미국의 금리 기조가 이를 상쇄하면서 환율이 변동성을 동반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를 웃도는 2분기 실적을 내놨는데도 반도체 고점론과 중동발 유가 불안이 겹치며 8일 코스피는 5%대 급락해 7246.79로 주저앉았고 외국인의 매도 우위도 이 무렵까지 이어졌다. 외환시장에서는 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기업의 수입 대금 결제 실수요와 외국인 자금 역송금이 당분간 환율을 떠받칠 수 있고 중동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원화가 아시아 통화 약세와 맞물려 다시 밀릴 여지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결국 환율이 1500원 아래에 안착하려면 반도체 기업의 달러 환전이 실제 물량으로 이어지고 외국인 순매도가 멈춰야 한다. 8일 뚫렸던 1500원선이 9일 개장과 함께 곧바로 회복된 데서 보듯 방향은 아직 한쪽으로 굳지 않았다. 두 조건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이번 하락을 추세 전환보다 고환율 국면에서 나온 되돌림으로 보는 시각이 시장에서 우세하다.
한편 신현송 한은 총재는 9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지금의 고환율이 대외 여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에 달러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띠는 가운데 국내 특유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요인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단기적으로는 수급이 환율을 좌우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저력이나 통화정책 같은 기초 가치도 작용한다"라며 "경상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계속 쌓이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경제 틀에서 보면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목표치를 웃돌고 금융안정 위험도 남아 있어 적절한 시점에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견해도 재차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