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알츠하이머 치매 신약 '레켐비'의 치료비를 보장하는 특약을 앞세워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치료비를 미리 대비하려는 수요가 커지자 회사마다 보장 한도를 높이며 고객 확보에 나섰다. 한도는 회사에 따라 2000만원대에서 3200만원을 넘는 수준까지 벌어져 있다.
보험사들은 감독당국의 제동에도 판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보험사들에 치매보험 보장한도 기준과 손해율 추정 근거 등 내부 자료를 요청했다. 처음 1000만원 안팎이던 레켐비 담보 한도가 몇 달 만에 4000만원대까지 치솟자 사행성을 부추기고 나중에 보험금 분쟁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일부 회사는 한도를 3000만원대로 낮췄다. 그러나 7월 들어서도 여러 곳이 3000만원 안팎의 담보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 비급여 치료비 수천만원, 급여화는 험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뇌에서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뇌에 쌓여 신경세포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증상만 눅여주던 기존 약과 달리 레켐비는 이 원인 물질을 직접 건드려 병의 진행과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춘다. 2주에 한 번씩 정맥주사로 맞고, 보통 18개월 동안 36회를 투여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다 보니 18개월을 다 맞으면 약값만 수천만원이 든다. 투약 전후에 받는 아밀로이드 PET 검사마저 비급여라 부담이 겹친다. 환자와 가족들이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청원을 잇달아 냈지만 급여화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레켐비가 병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니라 인지 기능 악화를 27%가량 늦추는 약이어서 비용 대비 효과를 인정받기 어렵고, 약값을 크게 낮추지 않으면 급여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비급여 상태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치료비를 대비하려는 수요도 계속될 것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이미 급여를 적용한 나라도 있다. 일본은 레켐비를 공적의료보험에 넣고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 상한을 둬 고액 부담을 제도 안에서 완충하는 대신, 약을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 자격과 검사 장비 기준을 까다롭게 관리한다. 국내 임상 현장에서도 치료제까지는 아니어도 MRI 같은 검사비만이라도 먼저 급여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레켐비를 맞는 환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집계를 보면 국내 출시 첫 달인 2024년 12월 167건이던 처방이 지난해 12월 4362건으로 1년 만에 26배 가까이 늘었다. 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도 지난해 97만명으로 2023년보다 12%가량 많아졌다. 치매·간병보험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11월 누적 기준 1365억원으로 1년 전보다 42%쯤 불었다. 보험사들이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비' 담보를 키우는 배경이 바로 이 수요다.
이 담보는 식약처 허가를 받은 표적치매약물을 실제로 맞았을 때 보험금을 내준다. 한 번 진단으로 끝나던 예전 치매 진단비와 달리, 2주마다 반복해 맞는 치료에 맞춰 회차 구간별로 나눠 지급하는 식이다. 대체로 최경증 치매나 경증 알츠하이머 단계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적응증에 해당하는 환자가 약을 맞아야 보험금이 나오도록 짜여 있다.
◆ 농협·KB 3000만원대 보장…"초기 치매만 보장, 약관 살펴야"
한도를 가장 높게 잡은 곳은 농협 계열이다. 농협생명은 'NH올원더풀 기억안심치매보험'에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비 특약을 회당 90만원씩 최대 36회, 합쳐서 3240만원까지 넣고 급여 치매검사비와 종합병원 치매통원급여를 함께 묶었다. 농협손해보험은 'NH 백년동행 간병보험'에 3080만원 한도를 담으면서 갱신 없이 20년만 내면 보장이 이어지는 비갱신형이라는 점을 앞세웠고, 재가급여 월 100만원과 치매 검사비도 함께 보장한다.
KB라이프는 치매와 간병, 건강을 하나로 묶은 '골든라이프 딱좋은 간병보험'에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비를 넣어 최대 3200만원까지 보장한다. 치매·간병 신규 특약 17종을 함께 실었고 최대 80세까지 가입할 수 있다. DB생명은 '당신곁에 치매간병보험'에서 레켐비 투약 회차에 따라 1회차 500만원, 7회차 1000만원, 13회차 500만원, 19회차 700만원으로 나눠 최대 2700만원을 준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11일 통합치매진단과 치매통합치료비,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를 아우르는 치매 신규 담보 3종을 한꺼번에 내놨는데,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 특약은 1회·7회·14회·24회 구간으로 나눠 최대 2500만원을 보장한다.
삼성생명은 80세도 레켐비를 2000만원 한도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치매 검사부터 레켐비 투약, 재활치료까지 묶은 치매통합치료비 특약을 판다. 신한라이프는 '치매치료 골든타임'을 내걸고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플러스 특약을 최대 2200만원, 별도 특약을 회당 45만원씩 24회 한도로 최대 1080만원까지 보장한다.
손해보험에서는 이 담보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만든 흥국화재가 표적치매약물 허가치료비로 최대 2500만원을 주면서 가장 가벼운 최경증(CDR 0.5점)부터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화손해보험은 회차별 지급액을 올려 최대 19회, 60세까지 가입할 수 있게 했다.
보험사들이 이 담보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고령·유병 고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진단금만 주던 예전 치매보험과 달리 실제 치료비를 돌려준다는 점을 GA(법인보험대리점) 설계사들이 판매 현장에서 앞세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매가 진단에 머물지 않고 신약으로 진행을 늦추는 치료 단계로 넘어오면서 관련 담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라며 "GA를 통한 판매 비중이 커 각 사가 한도 경쟁에 민감하다"라고 말했다.
가입할 때는 어느 단계 치매까지 보장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레켐비는 뇌세포가 이미 많이 상한 중증 치매가 아니라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 환자에게 쓰는 약이다. 중증 치매 위주로 만들어진 예전 치매보험으로는 레켐비 치료비를 받기 어렵고, 경도 치매 진단이나 표적치매약물 치료비를 담은 특약이 있어야 보장을 받는다. 약값만이 아니라 투약 전후에 드는 MRI, PET 검사비까지 지원하는지도 챙겨봐야 한다.
레켐비가 나중에 건강보험 급여로 바뀌면 비급여를 전제로 설계한 이 특약들의 보장 방식도 손질이 불가피하다. 담보 대부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보험금이 나간 사례는 아직 드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