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상반기에만 두 배 가까이 뛰는 사이 빚을 내 주식을 산 개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벼랑으로 내몰렸다. 급락 때마다 담보를 채우지 못한 빚투 물량이 강제 청산되면서 올 상반기에만 3조원 넘는 개인 주식이 반대매매로 처분됐다. 이처럼 빚투 위험이 현실화되자 증권사들이 신용거래 문턱을 잇따라 높이고 있다.
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2일부터 증거금률 20~30%가 적용되던 종목을 40%로 일괄 올렸다. 고객이 종목별로 증거금률을 직접 정하는 맞춤형 증거금 서비스의 신규 신청도 받지 않고 만기 연장도 중단했다. 회사는 위탁매매 미수금이 빠르게 늘어난 점을 이유로 들었다.
메리츠증권은 에쓰오일과 크래프톤 등 12개 종목의 증거금률을 기존 30~50%에서 100%로 상향했다. 증거금률이 100%가 되면 주식을 담보로 한 신규 신용융자와 만기 연장이 모두 막힌다. 키움증권도 일부 종목의 신용등급을 낮추고 증거금률을 올렸고,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신용융자 한도를 일시 제한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증거금률 조정보다는 투자자 보호 쪽에 무게를 뒀다. 지난달 24일 신용·레버리지 투자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고령 투자자와 초보 투자자를 대상으로 위험 고지와 적정성 점검 절차를 손봤다. 영업점에서는 전담 프라이빗뱅커(PB)가 신용거래 적정성을 살피고 고령 투자자에게는 맞춤형 상담을 제공한다.
증권사들이 뒤늦게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6월 이후 커진 변동성이 있다. 지난달 코스피는 장중 급등과 급락을 오가며 매수·매도 사이드카가 열 차례 발동됐다. 18일 9000선을 넘어선 코스피는 22일 장중 9114.55까지 올랐다가 하루 만에 8203.84로 주저앉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장중 97.99까지 치솟아 지수 발표가 시작된 2009년 4월 이후 가장 높았다. 장중 낙폭이 담보유지비율 기준선을 밑도는 순간이 반복되며 반대매매가 급증해 올 1~6월 규모가 3조 1525억원에 이르렀다.
'나만 기회를 놓친다'는 포모(FOMO) 심리가 빚투를 부추겼다. 6월 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합계 55.6%에 이를 만큼 반도체 대표주로 매수세가 쏠렸고 여기에 5월 27일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진폭을 키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월 초 30조 4731억원에서 3월 초 32조 8041억원으로 늘더니 지난달 24일 38조 6328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이달 1일 37조 3393억원으로 내렸지만 최근 5년 평균(20조 1000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초단기 빚투 지표인 위탁매매미수금도 연초 9000억원대에서 1조 2000억원대로 뛰었다. 신용융자만 놓고 봐도 이달 1일 잔액의 78.6%가 코스피 종목에 쏠려 있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빌린 돈으로 주식을 산 뒤 담보유지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파는 제도다. 원치 않는 시점에 낮은 값으로 청산당해 손실이 커질뿐더러 한꺼번에 쏟아진 물량이 주가를 더 끌어내려 또 다른 반대매매를 부른다. 금융투자업계는 레버리지 ETF의 이른바 '숏감마' 현상을 변동성을 키운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기초자산이 급락하면 운용사가 이를 추종하기 위해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이 매도가 하락폭을 키우고 그 하락폭이 다시 더 큰 매도를 불러오는 식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5% 움직일 때마다 47억달러(약 7조 2000억원) 규모의 감마 리밸런싱 수요가 생겨 변동성을 끌어올린다고 분석했다.
빚투 위험이 커지자 당국도 경고 수위를 높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4일 국내 10개 증권사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를 불러 신용융자와 미수거래에 대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주문했다.
서재완 금융투자부문 부원장보는 "증권사들이 규정에 근거한 기계적 리스크 관리에서 벗어나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능동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라며 "투자자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수거래가 발생하거나 이를 사실상 유도하는 영업 관행은 자제해달라"라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빚투 확산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증권사 PB는 "2배 레버리지 ETF 수급이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에 쏠려 있어 무질서한 가격 변동에 노출될 위험이 큰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며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투자금을 빌렸다면 대출 조건과 담보 평가 기준, 반대매매 실행 조건을 꼼꼼히 살피고 만일에 대비해 미리 현금이나 담보를 확보해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