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세조종 혐의자를 또다시 검찰에 넘겼지만 이런 조작을 미리 걸러내야 할 시장경보 제도는 여전히 헐겁다. 적발은 반복되는데 예방 장치가 조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피해는 국내 개인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쏠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제12차 정례회의에서 가상자산 시세조종 2건의 혐의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이번에 고발된 두 사건은 수법이 다르다. 하나는 이른바 '고래'(막대한 자금으로 종목 가격을 좌우하는 초대형 투자자)가 수백억원을 투입해 약 두 달간 특정 코인 글로벌 유통물량의 절반가량을 사들인 뒤 국내외 거래소 가격 동조화를 이용한 장기 조종이다. 나머지 하나는 금융감독원이 기획조사로 적발한 초단기 조종이다. 호가가 얇은 김치코인을 상대로 API 주문을 초 단위로 반복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민 수법이다. 지난해 9월 첫 고발 이후 금융당국이 시세조종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통보한 사건은 이번까지 다섯 차례로 늘었다.
이렇게 조치는 쌓이지만 조작 방식은 판박이나 다름없다. 대규모 자금으로 유통물량을 미리 확보한 다음 고가매수 주문을 반복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개인 매수세가 붙으면 물량을 털어 차익을 남기는 이른바 ‘펌프 앤 덤프’가 매번 되풀이된다. 차익 실현이 끝난 뒤에 고발이 이뤄지다 보니 이미 발생한 개인 피해를 되돌릴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사후 처벌보다 조작이 진행되는 동안 작동할 사전 경보가 제 몫을 하느냐를 두고 회의론이 나온다. 지금 가상자산시장의 소수계정 거래집중 경보는 상위 10개 계정의 매매관여율이 50%를 넘으면 투자주의, 75%를 넘으면 투자경고, 90%를 넘으면 투자위험을 매긴다. 한 종목 거래의 절반 이상을 소수 계정이 주무른 뒤에야 첫 경보가 켜지는 터라 조종 초기를 잡아내기에는 그물코가 지나치게 성글다.
주식시장과 견주면 이런 허술함이 도드라진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소수계좌 거래집중을 투자주의 사유의 하나로만 두고 종가급변, 상한가 잔량, 단일계좌 거래량 같은 여러 지표를 함께 들여다본다. 경보 단계가 투자경고나 투자위험으로 올라가면 위탁증거금을 전액 현금으로 물리고 대용증권으로도 쓰지 못하게 한다. 투자위험 종목은 지정 당일 하루 매매가 정지된다. 시장감시규정이라는 법적 근거가 뒤를 받치는 만큼 경보가 곧 실제 거래 제한으로 이어진다.
반면 가상자산 경보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와 거래소별 내부기준에 기댄 자율규제에 가깝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경보가 매매 정지 같은 실질적인 제어로 이어지지 못하고 거래소마다 기준 해석이 엇갈리는 약점도 앞선 빗썸 오지급 사태에서 드러났다. 이상거래 적출과 상시감시가 대부분 거래소 자율에 맡겨져 있어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시장을 촘촘히 훑어내기가 쉽지 않다.
금융당국도 이런 공백을 모르지 않는다. 금융위는 '고래' 투자자의 매집·처분 정보를 투자자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소수계정 거래집중 등 시장경보가 더 효과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속 개선하겠다"라고 밝혔다. 현행 경보 체계로는 대형 조종 세력을 조기에 붙잡지 못한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대목이다.
가상자산은 코인 하나가 국내외 여러 거래소에 쪼개져 상장되고 시가총액이 작은 김치코인일수록 호가층이 얇아 소수 자금만으로도 가격이 크게 출렁인다. 개인도 API로 자동 주문을 낼 수 있어 조작 도구를 손에 쥐기가 어렵지 않다. 이런 구조적 취약성에 맞춘 감시 지표를 새로 짜지 않으면 고발만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시세조종 처벌 근거를 담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미 시행됐지만 시장 감시와 경보의 세부 장치를 규율할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