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단기 급등한 뒤 곤두박질치면서 빚을 내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미수 물량이 이틀 새 3000억원 넘게 강제 청산됐다. 정상적으로 체결된 청산만 따지면 역대급 규모다. 빚투(빚내서 투자)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증시가 출렁이자, 대금을 채우지 못한 외상 매수분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진 결과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일 위탁매매 미수금 반대매매 금액은 1661억 9200만원에 달했다. 직전 거래일(243억원)의 일곱 배에 가까운 규모다. 폭락이 이어진 8일에도 1391억 3400만원어치가 청산돼 두 거래일을 합한 규모는 3053억원으로 불어났다.
통계상 최고치는 2023년 10월 24일의 5487억원이지만, 당시는 영풍제지 거래정지로 반대매매가 제대로 체결되지 못한 채 미청산분이 쌓인 예외적 사례였다. 실제로 처분된 물량만 놓고 보면 이번이 가장 컸다는 게 증권가의 설명이다.
청산 강도도 평소와 차원이 달랐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비중은 5일 9.1%, 8일 8.2%로 평소 1~2%대를 네다섯 배 웃돌았다. 미수거래자가 약정한 외상의 10분의 1 가까이가 하루 만에 강제로 팔려나간 셈이다. 미수거래는 주식을 산 뒤 이틀 안에 대금을 채우지 못하면 사흘째 되는 날 증권사가 보유 주식을 강제로 매도하는 구조라서 코스피가 5일과 8일 잇따라 무너지면서 청산이 그만큼 한곳에 몰렸다.

청산을 키운 불씨는 폭락 직전 부풀어 오른 미수금이었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지수가 8800선을 찍은 직후인 4일 1조 8293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축에 드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이후 5일 1조 6885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이달 2일(1조 3277억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3600억원 넘게 많은 수준이다.
평소 1조원 안팎이던 미수금은 5월 중순 이후 1조 5000억원을 웃도는 날이 부쩍 잦아졌고, 4일과 5일에는 1조 6000억~1조 8000억원대로 부풀었다. 지수 상승에 올라타려 초단기 외상 베팅이 몰린 직후 시장이 돌아서자, 레버리지가 고스란히 청산 압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코스피는 2일 8801.49까지 오른 뒤 4일과 5일 각각 1.8%, 5.5% 내려 8160선으로 밀렸고, 8일에는 8.3% 폭락해 7484로 거래를 마쳤다. 이런 청산이 처음도 아니다. 앞서 5월에도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3000억원 안팎이 강제 청산되며 약 31개월 만에 하루 반대매매가 1000억원을 넘겼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규모의 청산이 되풀이된 것이다.
더 신경 쓰이는 대목은 이 수치가 시장 전체의 강제청산을 다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금투협 미수거래 통계는 초단기 외상만 잡을 뿐, 신용융자 계좌의 담보 비율이 무너져 발생하는 반대매매는 빠져 있다. 더구나 빚투 잔고는 이번 폭락에도 거의 줄지 않았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2일 27조 4207억원에서 다섯 달 만에 38% 불어나 지난달 29일 38조 227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8.3% 폭락이 덮친 8일에도 37조 7904억원에 머물렀다. 5일(37조 8384억원)과 견주면 480억원, 사상 최대치와 비교해도 2300억원가량 줄었을 뿐이다. 빚을 내 사들인 주식이 청산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쌓여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예탁증권 담보융자(26조 5510억원)까지 더하면 시장에 깔린 레버리지만 64조원에 달한다. 미수 통계에 잡힌 청산은 이 가운데 일부일 뿐이어서 변동성이 다시 커지면 통계 밖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
미수거래가 유독 위험한 까닭은 만기가 이틀밖에 안 된다는 데 있다. 상환 기한이 수개월인 신용융자와 달리 지수가 며칠만 흔들려도 손실을 만회할 겨를 없이 사흘째 강제 처분으로 직행한다. 반대매매로 쏟아진 물량이 주가를 더 끌어내리고, 떨어진 주가가 다른 계좌의 담보를 무너뜨려 다시 청산을 부르는 악순환도 부담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청산되지 않은 빚투 물량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남아 있는 만큼, 변동성이 재차 커지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신용융자 청산까지 가세해 매도 압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