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에너지 산업 대전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회사마다 에너지 투자 무게중심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전환금융과 신재생, 인프라를 아우르는 전방위 투자에 나선 반면, 농협금융지주는 석탄발전을 LNG로 바꾸는 전환금융에 무게를 실었고, JB금융지주는 태양광 중심의 신재생에너지에 자금을 집중했다. 같은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책 틀 안에서도 회사마다 강점과 지역 기반에 따라 선택이 갈렸다.
2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권대영 부위원장은 전날 주재한 '생산적 금융 협의체' 4차 회의에서 금융회사가 생산적 금융 실적을 담은 팩트북을 4분기에 공개해 정부·전문가·시장 참여자 등으로부터 평가받는 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올해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날 회의에서는 각 사가 에너지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있는지가 공유됐다.
KB금융지주는 2020년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탈석탄금융을 선언했고, 이후 전환금융과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인프라 등 밸류체인 전반에 6조 9000억원(지난 5년간 약정 기준)을 공급해왔다.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ESG 컨설팅과 국내 최대 수준의 ESG채권 발행 주관, 탄소배출권 시장조성자 역할도 함께 맡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완도금일 해상풍력 발전사업 등 신재생에너지에 3조 5000억원(3월 말 약정 기준)을 공급했고, 그룹 공동으로 5000억원 규모의 하나모두성장인프라 펀드를 결성해 추가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석탄발전설비를 LNG열병합설비로 바꾸는 전환금융과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3조 8000억원을 집행했으며, 앞으로 연료전지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지원 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지역 기반 금융지주들은 각자의 지역 산업구조에 맞춘 사업을 내놓고 있다. JB금융지주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3조 1000억원을 집행하면서, 호남 지역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RE100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제1금융권 가운데 처음으로 RE100 전용 태양광대출 상품을 내놨다.
BNK금융지주는 전통 제조업 비중이 높은 부·울·경 지역 특성에 맞춰 전환금융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전환금융 4600억원, 신재생에너지 9100억원, 에너지인프라 9700억원 등 에너지 밸류체인에 모두 2조 3400억원을 약정했다.
증권사들은 IB 역량을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 주선에 힘을 싣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사업 주선을 바탕으로 에너지 고속도로 등 핵심 인프라 투자를 늘려가는 한편, 제주은행과 협업해 지역 발전사업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모델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해상풍력 전문 설치선 '누리바람' 금융주선 등으로 2000억원을 공급했고, 올해는 고창 해상풍력을 포함한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3조 1000억원 규모 금융주선과 1조원 이상의 자금공급을 추진한다.
보험사는 장기 자금 운용 특성을 살려 인프라성 자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교보생명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LNG터미널 같은 에너지인프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려왔고, 앞으로 연료전지 발전사업과 BESS 등 신사업까지 영역을 넓힌다. 삼성화재는 신재생에너지에 2조 9000억원, BESS와 가스공급 등 에너지인프라에 2000억원으로 모두 3조 1000억원을 약정했다. 최근 3년 동안 에너지 분야 22개 주요 프로젝트에 8000억원을 집행했으며, 생산적 금융 펀드 투자도 계속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은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은 5대 시중은행과 공동으로 2030년까지 9조원 규모의 미래에너지 펀드를 조성했고, 최대 출자자로 참여해 시중은행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현재 1조 2600억원 규모의 1단계 펀드 조성을 마쳤으며, 1호 투자로 신안우이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했다. 중소기업은행은 앞으로 5년 동안 8조원 규모의 에너지 분야 생산적 금융 공급 계획을 세웠고, 4월까지 정책펀드 7500억원을 조성해 전남 BESS 사업에 1200억원을 투자했다.
권 부위원장은 "무늬만 생산적 금융이 되지 않도록 금융권과 정부가 생산적 금융 역량이 내재화·체계화되도록 노력하자"라며 산업 연구 역량 제고와 핵심성과지표(KPI) 반영 등을 통해 금융권 스스로 생산적 금융을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도 생산적 금융 전반에 검사·제재 면책 등 전방위 지원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