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칼럼] 귀로 듣는 정밀아의 에세이 '청파소나타'

2021.04.21 17:20:09

 

[라온신문 안광일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가사에 감정이 별로 없다. 개인의 경험이나 문학적 가치가 담긴 가사보다 중독적인 단어를 나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크 뮤지션인 정밀아의 음악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가사를 곱씹어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정밀아의 정규 3집 ‘청파소나타’에는 그러한 가사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 앨범의 제목에도 있듯이 정밀아는 청파동으로 이사한 가을부터 초여름까지 주민으로써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음악으로 표현했다. 정밀아의 서울살이를 들어보자.

 

정밀아의 첫 곡에는 직접 녹음했다는 새벽녘의 새소리가 등장한다. 바쁜 아침이 시작되기 전 고요한 분위기로 앨범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은 곡은 담담하게 들리는 정밀아의 보컬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시, 시는 생동하는가. 밤, 이 밤은 물러날지니, 아침, 새 아침이 밝아오리라’ 등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녀의 앨범의 특징 중 하나는 실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가사가 많다는 점이다. ‘서울역에서 출발’과 ‘언니’가 그렇다. ‘서울역에서는’ 실제 엄마와의 통화 내용을 가사에 옮겼다고 한다. 둘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서울에 상경한 지방인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많다.

 

예컨대, ‘근데 엄마 혹시 그 날이 기억나세요? 내가 혼자 대학 시험보러 온 날, 옛날 사람 봇짐 메고 한양가듯이 나도 그런 모양이었잖아요’ 라며 서울의 첫 날을 돌이켜 본다던가 ‘엄마 요즘 고향가는 기차는 말야. 아주 좋아 빠르고 세련됐어요’ 라며 훌쩍 변해버린 서울을 신나게 설명하기도 한다. 

 

‘언니’의 앞 부분에서 정밀아는 자신이 마치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며 자신의 아픔을 토로한다. 그러면 곡의 뒷 부분은 또 다른 정밀아가 밥 한끼 먹자며 '넌 참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위로를 건넨다.  이렇듯 곡 '언니'는 마음의 아픔과 그것을 위로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정밀아 혼자 불러낸다. 사람을 통해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 위로를 받는 사회를 그렸다고 한다. 

 

언니, 아직 안 자나요
나 잠이 안 오네요
나랑 얘기 좀 할래요
그냥 얘기 좀 들어줘요.

사과같이 어여쁜 내 친구야
아, 어쩌면 좋을까
나도 아직 세상이 어려워
매일 아무것도 몰라
우리 날씨가 좋은 날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그렇다면 앨범 제목에도 등장하는 청파동에 대한 감정은 어떨까? ‘오래된 동네’에서는 ‘지금도 미싱 소리가 뛰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낮은 집들은 차곡차곡 저기 높은 언덕 위까지, 이곳엔 많은 사람이 그만큼 많은 삶들이, 떠도는 방랑자의 낡은 가방도 내치지 않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광장’에서는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담았다. 실제 집회에서의 함성과 함께 도로의 확성기 소리를 삽입해 현실감을 더했다.

 

‘환란일기’는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냉장고도 비어가고 우리 만나 손을 잡고 안지도 못해 기약 없는 격리의 시간’ 등 다소 심각한 내용을 담은 가사와 대비된 밝은 멜로디와 한층 밝은 정밀아의 보컬 톤은 어려운 상황을 비극적인 상황을 조금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춥지 않았던 밤 서울을 걸으면서 음악 대신 서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던 날 서울의 한쪽 구석에서 느낀 점을 쓸쓸한 감성의 가사로 담아낸 '춥지 않은 겨울 밤'과 새벽 바다의 고요하고 무심한 분위기를 담아낸 '바다Ⅱ'에서는 정밀아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부른 짙은 감성의 보컬이 돋보인다. 

 

정밀아가 쓴 에세이 한 편을 읽은 듯한 ‘청파소나타’는 강한 울림을 준다. 부드러운 음색에서 읊어내는 가사의 내용은 청파동의 골목에서 서울역과 광화문 광장까지 천천히 훑어나가면서 사회를 끌어 안아주는 느낌이 강하다. 서울로 상경해 느낀 서울살이의 팍팍함과 ‘결국 다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하는 사람 냄새가 나는 앨범이다.

 

뭐든 퓨전이 많아진 대중음악계에서 정통 포크를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밀아는 이번 앨범에서도 정통 포크를 선보인다. 모든 곡의 작곡과 작가는 물론이고 통기타와 피아노를 동반한 모든 연주는 직접 소화했다고 한다.

 

유독 보컬이 잘 들리는 곡의 스타일만큼 음정이 살짝 엇나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마저도 연출같은 보이는 앨범이다. 정밀아는 ‘청파소나타’로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앨범’, ‘최우수 포크 노래’ 등 3관왕을 달성했다.

안광일 ahn1@ra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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